된장녀의 소비패턴과 나의 소비패턴

[된장질, 혹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문화생활.에서 트랙백]
[된장녀가 뭐야? & 사치에 대한 찬양에서 더블 트랙백]
[된장녀의 탄생과 변화, 그리고 상용화에서도 트랙백]
[아무나 된장녀가 아니지에서마저도 트랙백... 할일이 너무 없는게야... -_-;;;]

0. 트랙백 과다...

오랜만에 글을 써놓고 나니 아래 핑백이라고 달린 글이 재밌어보여서 읽고, 트랙백도 걸고 하다보니 이렇게 겉잡을 수 없는 트랙백의 향연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할일이 너무 없는가봅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듣기만 하고 잘 모르던 된장녀 이야기를 정리하니 뭔가 뿌듯한 느낌! -_-;;;

1. 카페라떼와 스타벅스, 그리고 된장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카페라떼를 좋아한다. 에스프레소만 마셔서는 몸이 버거울 것 같고, 무언가를 계속 홀짝거리는 내 습성에 작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은 보기만 해도 무언가 부족하고 허전하기 때문이다. 카푸치노도 좋지만, 역시 내게는 우유가 더 많이 들어가 부드러운 카페라떼가 더 잘 맞는다. 

그러나 나는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 비싸기도 비싸고, 그들의 제국주의와 결합된 자본주의 상술도 싫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맛이 없다는 것이다. -_-;;; 뭐, 가장 많이 널려있고, 밖에서 사먹는 커피 중에는 그나마 간편하고 괜찮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그 돈의 가치에 비해 시원찮은 건 사실이다. 커피 내리는 기계도 그렇고, 우유 데우는 통도 그렇고, 그리 깨끗할 것 같지도 않고, 질 좋은 원두를 가져다가 그냥 그런 커피를 만들어서는 돈 몽땅 받으면서 파는, 그런 데서 별로 마시고 싶지 않달까. 뭐, 그렇다고 딱히 다른 데서 커피를 마시는 게 수월한 건 아니다. 일단 집을 나서면 세 가지 중 하나다. 회사에서 공짜로 타먹을 수 있는 간단 버젼, 스타벅스와 그 아류, 혹은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제대로 된 커피. 굳이 밖에서 사마셔야 한다면 Seattle's Best를 먹겠으나, 찾기도 힘들고, 뭐... 그래서 난 커피를 사마시지 않는다.

이런 내게 "된장녀"라는 말는 단지 밥값 못지 않은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취향이 약한 사람,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이 자신이 즐기는 것보다 중요한 사람, 혹은 자신이 즐기는 것이 없을 지라도 다른 이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돈은 쓰는 사람이라는 말로 들린다. 뭐, 그리 비싼 커피를 그렇게 마시는 것도, 사람 바글바글한 곳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별로 예쁘지도 않은 컵과 설탕만 가득인 먹거리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것도, 내가 안(못?)하는 것뿐이지, 그들이 한다면 그들 마음인 거다. 그냥 내게는 그 사람들이 괜히 비싼 돈 주고 맛 없는 커피 마시면서 엄청난 문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그걸 뻐기는 사람 정도다.

2. 나의 과소비

서른 넘어서 처음으로 직장 같은 직장 다니고, 제대로 돈을 벌게 된 지 이제 한 달이 좀 넘었다. 그런데, 이놈의 돈이 모이기는 커녕 자꾸 빵구가 난다. 처음에는 집세다, 이사비용이다, 한 두 달만 내면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면서 치렀는데, 이제 한 달이 넘어가니까 가구도 사고, 좋은 TV도 사고, DVD 플레이어도 사고, 아주 난리가 났다. 뭐, 내 돈 내가 쓰는 거긴 하지만, 문제는 그런 물건들을 사면서 내가 과소비를 하고 있다는 거다. 서른 넘도록 제대로 소비생활이나 취미생활을 한 게 없으니, 물건을 살 때마다 내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남의 의견을 듣게 되고, 눈치를 보다보니, 결국은 분수에 넘치는 물건을 사고 만다.

이를테면, DVD 플레이어를 사면서 처음에는 무난하고 저렴한 편인 LG나 삼성을 사려고 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Bose가 좋다고 하니까 솔깃해서 (내 귀에는 정말 비슷하게 들리는데도!) 괜히 Sony나 삼성 소리가 안 좋은 것 같고, 그러다가도 우연히 전문가들에 따르면 Bose가 가격 뻥튀기가 심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스스로의 취향이 부끄러워지면서도 또 그 전문가라는 이들의 말에 솔깃해서 Denon같은 희미하게 한 번 들어보나 마나한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런 식이다. 그리고는 결국 즐길 능력도 없으면서 처음 생각했던 제품보다 몇 배나 비싸고 좋(다)는 제품을 무리해서라도 사게 된다. 스타벅스를 사마시는 것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드는 과소비고 허영이 아닌가, 젠장!

나의 과소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취향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친구들 불러서 보여주고 자랑하면 으쓱하겠지만, 뭐, 몇 명 있지도 않은 친구들이야 한 두 번 부르면 끝이고... 스스로 이제 돈도 버니까 무언가를 잘 해 놓고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욕심은 있는데, 뭘 어떻게 할 지 몰라서 버둥거리는 통에 허영이 드는 거다. 그냥 집에 가면 좋은 소파가 있고, 좋은 DVD 플레이어와 TV가 있고, 좀 사는 집 같고, 부자들, 고상한 사람들과 동급이 된 것 같고, 그런 느낌, 그런 허영심에 돈의 수도꼭지를 틀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런데 말이다, 이게 내가 즐기지 못하니까, 뭔가 그럴듯하게 꾸며놓아도 불편하고 주눅이 든다. 읽지도 않는 책을 유명하다는, 소장 가치가 있다는 말만 듣고 덜컥덜컥 사서는 한 방 가득 꽂아놓고 그 거대한 쓰레기 더미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변태의 심정,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알까? 집에 들어가면 커다란 TV와 좋은 DVD 플레이어가 나를 비웃듯 쳐다보고 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 그래서 이런 거 사면 더 사람들을 불러서 자랑하고 싶은가보다. 친구들에게 뻐기면서, 그들의 효용에 대해 떠벌리면서 자신이 "주인"이 된 듯한 느낌을 찾고 싶어서... 이게 바로 인간의 소외고, 물신주의라는 거겠지.

그리하여 나는 그런 느낌을 떨치기 위해서 돈을 더 쓰기로 마음 먹었다. -_-;;; 뭐, 더 좋은 걸 사서 이미 갖고 있는 DVD 플레이어와 TV를 주눅들게 하겠다는 게 아니고, DVD를 열심히 보고, 좋은 음악을 열심히 듣고 하면서 그것들을 내것처럼, 내 수준에 맞는 것처럼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뭐, 내가 수준이 올라간 이후에 그것들을 "선택"해서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좋은 음악과 영화를 보면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면, 내가 산 물건들이 나를 문화생활로 이끌어주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 뭐, 서른 넘었는데 지금 뭐가 앞이고 뒤고 따질 땐가? 나도 이제 정말 즐기면서 즐거웁게 살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지지난 주말에는 굳이 인터넷 주문을 하지 않고, 동네에 있는 (거대 자본주의의 수혜자인) 책방 체인점에를 갔다. 회사에 오후 늦게 나가는 길이었지만, 그래도 찬찬이 둘러보고, 책장도 넘겨 보고 하면서 클래식 음악 입문서 한 권을 샀다. 대학 다닐 때 들었던 서양음악 입문 교과서보다 더 간단한, 그야말로 들어본 작곡가들의 유명하다는 음악만 짧게 짧게 소개되어있는 책이다. 그 책을 들고는 또 동네 CD 가게에를 가서 음반을 하나 샀다. 유명한 연주자인지, 알아주는 지휘자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들어본 회사에서 나온 음반이 무난하겠거니 하면서 골랐다. 회사에 가서 일하는 척 책을 야금야금 읽고, 집에 돌아와서는 CD를 듣기 시작했다. 들어본 부분을 제외하고는 처음 듣는 CD였지만, 그래도 일주일 내내 들으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그 멜로디도 부분부분 따라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소외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시작하고 있다.

3. 자신의 가치와 자신에게의 가치

소위 "된장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잘못한 건 그저 사람들이 잘 안 하는 것, 사람들이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 것에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는 게 아닐까 한다. 그 돈과 시간과 노력으로 더욱 가치있(다고 사람들이 여기)는 것을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만약 그게 그들 자신에게 가치있는 일이라면 누가 뭐라 할 게 아니다. 내게 그 돈이 주어진다면 무언가 (내게) 더 보람되고 의미있는 일을 했을텐데, 그렇게 대단치 않아보이는 것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니 속이 터질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건 그들의 돈, 시간, 노력, 삶이고, 그들이 그렇게 소비(혹은 낭비?)하는 것은 그것대로 "자유"로서의 가치를 지니니까 말이다. 사실, 내게 그 돈이 쥐어진다고 정말 세상을 밝히는 데 쓰겠냐고 물어보면 100% 단언할 수 없는 게 세상 사는 일이고, 사람의 마음이고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못내 하나가 아쉽다면 사람들이 "자신에게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구별해서 생각했으면 하는 거다. 어떤 글에서는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스타벅스를 "나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혹은 "나의" 가치가 높아보이기 때문에 마신다면 그것은 허영이고, 반대로 그것이 "내게"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마시는 거라면 자신의 소비생활 이상 아무 것도 아니지 않냐는 말이다. 명품을 사는 거라면 사람들이 좋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쓸모가 있고, 자신이 그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어야지, 다른 이들이 그것을 보고 나에 대해 허구의 존경심을 갖기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허영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소비 생활이다. (Veblen이라는 사람은 이런 얘기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는데...) 

또 한 가지. 내게 가치있는 것을 소비하는데 우연히 그것이 사람들 눈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해서 나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나의 가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사고의 깊이, 나의 철학, 나의 습관과 태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내가 소비하는 무언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을 즐길 줄 알고, 스포츠를 즐길 줄 알고, 영화를 볼 줄 알고, 그 밖의 어떤 "문화 생활"을 하든,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커피를 사마시지 않고, DVD 플레이어와 TV에 과소비를 했으며, 이제 내가 저지른 과소비를 과소비가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소비를 한다면, 누가 나를 된장남이라고 부르든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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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room | 2007/10/18 04:15 | Confidan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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