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이야기(2)를 쓰기 전에 예전에 쓴 글을 먼저 옮긴다.]
(2005)
내가 교회에 가서 "하느님/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받는다거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여기 오는 사람 중에도 신실한 사람이 있을테지만, 어쨌든, 교회에 대해서 간략하게 끄적거려보자면......
1. 나도 교회에 가면 감동받는다. -_-;;
그러나, 내가 받는 감동은 신과의 연결지점을 찾는다거나 신의 은혜를 받아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 의식 자체에서 나오는 아우라에 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면서 감동받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니, 오히려, 뭉클한 노래를 들을 때와 비슷하다. 요전에 들판을 달리면서 변진섭, 이상은 등을 부를 때의 벅찬 기분, 기쁨과 생의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아마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실은 다른 사람들도 교회에서 느끼는 것이 그런 종류의 감동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맑스의 말이 더 잘 와 닿는 것 같다.
2. 신이 길을 보여준다는 말에 대해서......
모든 것이 보기에 따라 달라보인다고, 나의 삐딱한 관점에서 보자면 역시 신이 인간사에 관여한다는 것은 그저 믿는 사람들의 바램이랄까, 만일을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믿으면 좋겠지만, 또 그 "만일 관여한다면?"이라는 그야말로 "만약"에 기댈 뿐, 설득력이 떨어진다. 뭐,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이따위로 되겠냐는 말도 네가 신의 뜻을 어떻게 아냐는 질문에는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따위로 돌아가는 세상을 미시적으로 바라보자면, 그리고 우리 존재의 미시성을 볼 때, 오히려 뜬구름 잡는 그런 거시적인 대답에는 별로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도대체 열혈 기독교 신자인 부시에게 신이 보여주시는 길과 내가 생각하는 길의 본질적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따라서 절대자에 귀의하고 의지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 이상의 종교는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꼬마 신들이 인간 문명을 만드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인간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이지만, 그들끼리는 상대적인 존재가 되며, 오히려 평등하다 할 수 있는 그 수업...... 다른 하나는 투캅스에서 안성기가 교회에 다녀와서 하는 지껄임이다. 교회에서 "자신의 작은 권력으로 남을 괴롭히지 마라"는 내용의 설교를 들은 이 부패경찰은, 자기가 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고 신참 박중훈이 원칙과 소신으로 밀어부치는 일들이 자신에게 주는 피해를 성토한다. 종교는 인간에게 바르게 생각할 기회를 줄지언정, 인간을 바르게 만들지는 않는다. 절대적인 것은 모든 상대적인 것에 길을 열어주게 되어서 결국은 절대적인 것은 절대적이라는 되풀이 말고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면 절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의미가 없지. 그 안에서 상대적인 모든 지껄임들이 절대적인 힘을 얻으니까...... 이런 맥락에서 종교 자체보다는 교육과 연결된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더 관심이 갈 수밖에......
3. 종교에 귀의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글에서도 쓴 것처럼 종교에 귀의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인간의 본질에서 오는 나약함이 필연적으로 낳는 결론이 아닐까 한다.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검증된 현실, 정신과 육체의 고통,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 더하여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종교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기에. 절대자에 의지하여 걱정과 근심을 덜고 하루하루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는 것, 바로 하루하루를 더욱 뜻깊게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한 전제는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믿음"을 얻는 것인데......
4. 얼마 전 받은 신부님의 편지
얼마 전 한 신부님께 "종교도 결국은 감정에 호소하여 인간의 근심 걱정을 덜어주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요?"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신부님 대답을 요약하자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가가지 마세요. 종교는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넘어서서 인간의 가장 깊은 영혼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다. 글쎄......내가 종교에 깊이 발을 담근 사람들을 어떤 의미에서 경계하고, 조금은 의아하게 여기는 것처럼 그들은 나를 불쌍하게, 혹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가치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하나의 절대적인 가치에 마음을 맡기는 것은 고사하고 그 절대적인 가치 혹은 영혼의 문제에 마음을 여는 것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감성을 자극하는, 이성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절대화하는 것이 가져오는 위험성에 눈을 부라릴 수밖에......더구나 마음의 안정을 얻기 전에 분명하지도 않은 신화 속의 "신의 뜻"을 찾아 헤매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면 누구의 말대로 자신을 학대하는 것 이상이 되기 정말 어려울 터인데 말이다. 이문열(젠장~!!!)의 "사람의 아들"은 이런 기독교의 자학성을 그야말로 멋지게 꼬집어낸 작품이라 하겠다.
5. 기독교와 진보성
기독교야말로 가장 진보적일 수 있는 종교인 것 같은데, 기독교만큼 보수적인 단체가 또 없다. 특히 한국의 비뚤어진 기독교 단체들이 그러하다. 한국에서 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이 미국 사회의 흐름에도 끼지 못하고, 한국의 사회변화에서도 떨어져 있는 채 지금까지도 60년대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한국으로 유입된 기독교가 당시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기독교 본래의 정신에서도 유럽/미국 기독교의 흐름에서도 고립되고 한국 사회의 진보에도 등을 돌린 채 극우 집단의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눈물흘리는 군중을 동원하는 데 앞장서게 된 것은 그저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절대로 한국 기독교 전체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한 주 한 주의 헌금에 눈이 멀어서 사회를 보지 못하고 사람을 보지 못하는 종교단체 모두에게서 교육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기는 애시당초 글렀다는 자조의 씨부림이랄까......
6. 싱거운 발빼기
그렇다고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바보라거나 양심이 없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테고...... 그저 한 인간과 신의 만남, 인간들의 축제와 반성/기쁨/공유/사랑의 장으로서의 종교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고 싶은 나의 마음은 역시 사치인가 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안성기와 부시가 종교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 더 가까운 것 같아서 속상하다.
블루룸
(2005)
내가 교회에 가서 "하느님/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받는다거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여기 오는 사람 중에도 신실한 사람이 있을테지만, 어쨌든, 교회에 대해서 간략하게 끄적거려보자면......
1. 나도 교회에 가면 감동받는다. -_-;;
그러나, 내가 받는 감동은 신과의 연결지점을 찾는다거나 신의 은혜를 받아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 의식 자체에서 나오는 아우라에 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면서 감동받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니, 오히려, 뭉클한 노래를 들을 때와 비슷하다. 요전에 들판을 달리면서 변진섭, 이상은 등을 부를 때의 벅찬 기분, 기쁨과 생의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아마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실은 다른 사람들도 교회에서 느끼는 것이 그런 종류의 감동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맑스의 말이 더 잘 와 닿는 것 같다.
2. 신이 길을 보여준다는 말에 대해서......
모든 것이 보기에 따라 달라보인다고, 나의 삐딱한 관점에서 보자면 역시 신이 인간사에 관여한다는 것은 그저 믿는 사람들의 바램이랄까, 만일을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믿으면 좋겠지만, 또 그 "만일 관여한다면?"이라는 그야말로 "만약"에 기댈 뿐, 설득력이 떨어진다. 뭐,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이따위로 되겠냐는 말도 네가 신의 뜻을 어떻게 아냐는 질문에는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따위로 돌아가는 세상을 미시적으로 바라보자면, 그리고 우리 존재의 미시성을 볼 때, 오히려 뜬구름 잡는 그런 거시적인 대답에는 별로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도대체 열혈 기독교 신자인 부시에게 신이 보여주시는 길과 내가 생각하는 길의 본질적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따라서 절대자에 귀의하고 의지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 이상의 종교는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꼬마 신들이 인간 문명을 만드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인간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이지만, 그들끼리는 상대적인 존재가 되며, 오히려 평등하다 할 수 있는 그 수업...... 다른 하나는 투캅스에서 안성기가 교회에 다녀와서 하는 지껄임이다. 교회에서 "자신의 작은 권력으로 남을 괴롭히지 마라"는 내용의 설교를 들은 이 부패경찰은, 자기가 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고 신참 박중훈이 원칙과 소신으로 밀어부치는 일들이 자신에게 주는 피해를 성토한다. 종교는 인간에게 바르게 생각할 기회를 줄지언정, 인간을 바르게 만들지는 않는다. 절대적인 것은 모든 상대적인 것에 길을 열어주게 되어서 결국은 절대적인 것은 절대적이라는 되풀이 말고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면 절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의미가 없지. 그 안에서 상대적인 모든 지껄임들이 절대적인 힘을 얻으니까...... 이런 맥락에서 종교 자체보다는 교육과 연결된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더 관심이 갈 수밖에......
3. 종교에 귀의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글에서도 쓴 것처럼 종교에 귀의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인간의 본질에서 오는 나약함이 필연적으로 낳는 결론이 아닐까 한다.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검증된 현실, 정신과 육체의 고통,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 더하여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종교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기에. 절대자에 의지하여 걱정과 근심을 덜고 하루하루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는 것, 바로 하루하루를 더욱 뜻깊게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한 전제는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믿음"을 얻는 것인데......
4. 얼마 전 받은 신부님의 편지
얼마 전 한 신부님께 "종교도 결국은 감정에 호소하여 인간의 근심 걱정을 덜어주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요?"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신부님 대답을 요약하자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가가지 마세요. 종교는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넘어서서 인간의 가장 깊은 영혼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다. 글쎄......내가 종교에 깊이 발을 담근 사람들을 어떤 의미에서 경계하고, 조금은 의아하게 여기는 것처럼 그들은 나를 불쌍하게, 혹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가치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하나의 절대적인 가치에 마음을 맡기는 것은 고사하고 그 절대적인 가치 혹은 영혼의 문제에 마음을 여는 것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감성을 자극하는, 이성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절대화하는 것이 가져오는 위험성에 눈을 부라릴 수밖에......더구나 마음의 안정을 얻기 전에 분명하지도 않은 신화 속의 "신의 뜻"을 찾아 헤매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면 누구의 말대로 자신을 학대하는 것 이상이 되기 정말 어려울 터인데 말이다. 이문열(젠장~!!!)의 "사람의 아들"은 이런 기독교의 자학성을 그야말로 멋지게 꼬집어낸 작품이라 하겠다.
5. 기독교와 진보성
기독교야말로 가장 진보적일 수 있는 종교인 것 같은데, 기독교만큼 보수적인 단체가 또 없다. 특히 한국의 비뚤어진 기독교 단체들이 그러하다. 한국에서 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이 미국 사회의 흐름에도 끼지 못하고, 한국의 사회변화에서도 떨어져 있는 채 지금까지도 60년대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한국으로 유입된 기독교가 당시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기독교 본래의 정신에서도 유럽/미국 기독교의 흐름에서도 고립되고 한국 사회의 진보에도 등을 돌린 채 극우 집단의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눈물흘리는 군중을 동원하는 데 앞장서게 된 것은 그저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절대로 한국 기독교 전체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한 주 한 주의 헌금에 눈이 멀어서 사회를 보지 못하고 사람을 보지 못하는 종교단체 모두에게서 교육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기는 애시당초 글렀다는 자조의 씨부림이랄까......
6. 싱거운 발빼기
그렇다고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바보라거나 양심이 없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테고...... 그저 한 인간과 신의 만남, 인간들의 축제와 반성/기쁨/공유/사랑의 장으로서의 종교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고 싶은 나의 마음은 역시 사치인가 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안성기와 부시가 종교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 더 가까운 것 같아서 속상하다.
블루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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