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핀트를 맞춰주세요 & 왜 그 모양일까? & 남자는 군대 갔다와야 인간 된다? 에서 트리플 트랙백]

한국 남자들, 군대 이야기 말고는 별로 할 말 없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군대가 뭐하는 곳인가. 군대는 그 본질이 비효율적인 곳이다. 군대는 전쟁에 있어 전투를 수행하고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이다. 궁극의 승리를 위해서 개인의, 혹은 작은 집단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가장 무자비한 집단이 바로 군대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 군대는 상부의 명령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개개인이 명령 계통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개진하고 개별 행동을 하면, 군대는 그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돌격하라면 그러려니 하고 돌격하다 죽는 병정들이 있어야 장군들도 작전을 세우고, 전쟁을 수행해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없이 명령을 받들어야 하는 집단은 평화시에도 늘 그 연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 평소에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면, 위급할 때도 개인적인 이익을 계산하고, 나름대로 전략을 짜기 마련이다. 평소에 생각없이 복종하도록 훈련이 되어있어야 위급할 때 상부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바로 평화시에 군대에서 하는 것이 삽질이다. 삽질은 체력 단련을 위한 것도, 고참의 심술도 아니다. 아무런 생산 가치 없이 상부의 명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임무를 수행하도록 훈련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삽질의 본질인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본능이자 권리인,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통해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 그러한 기본적인 생존방식과 생활 습관을 포기하는 훈련, 그것이 바로 우리네 남자들이 2년, 3년 동안 하는 짓이다. 이것이 바로 첨단 무기니, 각잡힌 군복이니, 전우애가 살아있는 전쟁영화 따위로 덮으려고 해도 덮을 수 없는 군대의 "본질"이다. 그러니 제발, 군대가는 것과 여성의 출산/육아를 비슷하게 놓으려고 하지 말자. 군대는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비효율적인 짓거리이고,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인간이 인간의 몸으로 해낼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일이니 말이다.

그런 군대에서 우리네 남정네들을 그렇게 몇 년을 스스로를 버리는 것에 길들어간다. 훈련소만 들어가도 비인간적이 대우를 받는 것은, 바로 군대라는 조직의 본질이 비인간적인 데 연유한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찌기를 들으며, 공포에 떨면서 며칠을 견디고, 자신을 잃지 않으려 다짐을 해보지만, 결국 몇 달 후면 자신도 그 제도에 익숙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자신의 뿌리가 부정당하고, 생산성이라고는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집단에서, 가장 욕심많고 혈기 왕성한 나이에 몇 년을 보내면, 누가 그
세월이 아깝지 않겠나. 허허거리는 제대를 앞둔 병장도 그 마음 깊이 맺힌 상처, 자신의 뒤틀린 사고방식, 흩날려버린 세월 앞에 울분을 토할 법한 곳, 그게 우리네가 2년, 3년을 묻어두고 오는 군대라는 곳이다.

그렇게 속상한 시기, 그렇게 깊은 상처를 안고 나와서, 돈많은 사람, 권력있는 사람 자식들 군대 안 가는 거 보고, 여자들 군대도 안 가면서 같이 밥그릇 챙기려고 하는 거 보면, 박탈감을 왜 안 느낄까. 왜 안 억울하고, 왜 화가 안 날까. 그래서 술만 먹었다 하면 오바해서 즐거운 표정으로 군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 자신이 처해본 가장 인간 이하의 상황을 애써 포장하고 과장해서 덮어두려고 하는 게지...
 
그렇게 우리네 남자들은 군대 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별로 없다. 그렇게 우리네 남자들은 깊은 상처를 받고, 인정 못 받는다고 생각하며 외롭게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군대 얘기하는 남자들 보면 "쯧쯧쯧, 그렇게 할 얘기가 없나, 제대한 지 5년 1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런 거 밖에 할 얘기가 없나"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쌍한 놈, 그렇게 상처가 깊었나, 그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억울했을까." 싶다.

그런데 말이다, 그네들이 여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군대 안 갔다 왔으니 우리 사회에 낄 자격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남자들아,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 자신을 되짚어보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쓰다듬어보자. 과연, 내가 겪은 그 끔찍한 일을 우리 어머니, 우리 누나, 여동생, 우리의 사랑하는 애인과 아내가 똑같이 겪었으면 좋겠나? 그저 억울하고 속상한 것이라면, 뭐라도 변명을 붙이자. 군대 갔다 와야 사람된다도 좋고, 나라를 지키는 순결한 의무라고 해도 좋다. 다만, 그것을 다른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인 양 속이면서 우리 자신의 슬픈 모습을 외면하지는 말자.

(물론 돈으로, 빽으로 군대 안 가는 인간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블루룸,
고작 4주 훈련이었는데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by blueroom | 2007/06/13 12:27 | Trapez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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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else man at 2007/06/13 15:19
맞습니다. 출산이 힘드네, 군대가 힘드네하는 쓰레기같은 논쟁은 그만두고 좀 문제의 본질을 따졌으면 좋겠습니다. 가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어다 2년 썩히는 이 나라 제도에 문제가 있는 거지 남자/여자 편갈라 싸울 일은 절대 아닌데 말이죠.
Commented by bluesoup at 2007/06/13 21:16
트랙백보고 왔습니다:)
역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모병제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만[60만 대군을 먹여살리느니 그 수를 대폭 줄이고 첨단무기를 더 도입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설이 지배적이기도 하구요] 남북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한 국방부에서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서라도 절대 모병제 전환은 없겠죠-_-;
Commented by blueroom at 2007/06/14 05:24
else man// 맞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보상을 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제도를 바꾸어 갈 것인가인데, 뭐라고 말만 나오면 다들 감정적이 되어서 남/녀 편가르기로 문제를 호도하는 판이니, 안타까울 뿐이지요.

bluesoup//모병제 전환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문제입니다. 모병제를 하면, 돈도 돈이지만, 그 이후 더욱 심하게 양극화될 사회와, 군대 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모병제 전환이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아야겠지요. 어느 쪽으로 움직이든 매우 어려운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Commented by 이관준 at 2009/04/06 19:21
그럼요. 군대에 얼마나 또라이같은 놈들 많은데요. 별의별 인간쓰레기같은 놈들 다 있으니까.. 그래서 군대를 못잊는 겁니다.

어디 정신병원에나 가면 딱일 놈 하고 한내무반에서 것도 1년 365일 같이 있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미쳐요. 미쳐!
5년 됐나, 그래도 똘기있는 고참이나 후임들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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