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된 폭력, 경험의 부족, 그리고 싸가지...

[화장, 그리고 그것을 보는 인식., 그리고 /* 30대의 쌩얼은 무례? */ 에서 더블 트랙백]

며칠 전에 점심을 먹다가 뇌에 쥐가 나는 경험을 했다. 가난해서 건강 보험료 못 내고 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옆에서 계속 "아, 보험료라는 것이 투자지, 투자. 건강해보이지만, 언제 일이 날지 모르니 버리는 셈 치고 드는 게 보험 아니냐. 지금 100만원, 200만원 들어두면 나중에 병원비로 몇 천만원 깨질 일이 없는 것 아니냐." 이런 따위의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참나, 내가 그런 수준의 계산을 못해서, 보험 안 드냐? 돈이 없다고, 돈이! 그래서 쏘아주었다. "지금 내가 보험료 100만원을 내면, 다음 주 장볼 돈이 없어서 굶게 생겼는데, 다음 달 월세 낼 돈이 모자라서 쫓겨나게 생겼는데 그렇게 한가하게 위험부담과 비용 계산하고 앉아있을 수가 있냐고요!" 뭐, 멋쩍게 "할 말 없네." 하고 꼬리를 내리긴 하더라만, 그 사람이 정말 없는 이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생각을 해볼 것 같지는 않더라. 

"기사들이 쇼핑몰 한구석에 매캐한 자동차 매연과 빵빵 거리는 클래션 소리를 들으며 한끼에 500원짜리 밥을 먹을 때, 자신은 명품을 쇼핑하고는 제때 오지 않는 기사에게 지랄하는 사장은 결코 기사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사를 밥상에 끼워 넣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기사도 사람인데 그가 처한 사정을 들어나 봐 달라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대단한 대우를 해 달라는 것 아니다. 그냥 그녀들이 왜 힘든지에 대해 함께 진지하게 고민만이라도 해 달라는 것이다." -앤디님, "화장, 그리고 그것을 보는 인식"

이런 엿같은 경우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말하는 이가 그것을 잘못된 발언으로, 실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경험의 부족과 더불어, 자신은 절대 그런 처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식적/무의식적 자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기가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쉽게 정의내리고, 쉽게 비판하는 것, 그게 바로 싸가지 없은 것이요,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지 딴에는 남이 더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말 편하다고 느끼는건, 그동안 최소한의 화장이라도 하고 나가야 했던 한국의 직장생활 시절에 느꼈던 불편함이 컸기 때문일거다 ...[략]... 게다가 회사에서 남자들은 여자들 외모에 대해 아주 쉽게 이야기를 한다.  여직원 누구누구는 항상 예쁘게 하고 다니더라, 누구누구는 대체 여자가 맞는지 모르겠다, 누구누구는 화장이 너무 야하다..  그들은 아침마다 화장하게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해보지 않아서 모르니까 그렇게 쉽게 비평을 하는것 같다.  안해봤으니 그게 출근준비로 바쁜 아침에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모를테지..  하지만 모르면 그냥 입다물고 있어주면 좀 좋아..  아니, 그냥 사회 전체가 좀 외모에 대해 무관심해지면 좋으련만..  예쁘게 하고 다니건, 편하게 하고 다니건, 좀 그냥 놔둘 수 없나." - 너구리님, "/* 30대의 쌩얼은 무례? */"

인종 차별 문제, 남성/여성 문제가 더 어려운 것은 바로 이 "경험의 부족"이 극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는 더 드문 일이 되고 있지만, 어쨌든 돈이야 있다가 없기도 하고, 없다가 있기도 하니, 부자 중에도 가난한 사람의 삶을 살아본 사람,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부자의 삶을 들여다 볼 기회도 있다. 하지만, 타고난 피부색이나 성적 정체성을 바꾸는 거는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으니,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조차 없어지는 게 바로 문제라는 거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쉽게 재단하고, 쉽게 욕하는 것, 그게 바로 문제인데, 실제로 자기가 절대로 속할 일이 없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집단은 그야말로 그 구도에 들어가기 안성맞춤이라는 말이다.

백인들이 자신들이 결코 처할 일이 없는 흑인들을 열등한 존재로, 인간 이하의 동물로 인식했듯이, 남성들은 자신들과 교집합이라고는 없는 여성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규범을 만들고, 들이대는 것이다.
지멋대로 만든 규범을 남에게 들이대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뒷다마 까는 것, 더군다나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여자니까" 어쩌고 말 붙이는 것, 그게 바로 폭력이고, 싸가지 없는 짓이란 말이다. 


블루룸,
뒤늦게나마 트랙백 대열에 끼어보고 파...
by blueroom | 2007/06/11 00:56 | Trapeze | 트랙백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blueroom.egloos.com/tb/29627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미로속으로 at 2007/06/11 01:53
정말 그렇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욕부터 하는 세태... 요즘 들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말 함부로 하는거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Commented by 銀鳥-_- at 2007/06/12 10:33
사실 모르는 거 까지야 이해는 됩니다. 사람이 전부 다 알 수는 없는거니까요.
근데 "아니, 그건 달라" 라고 했을때도 안 들어먹히면 진짜... -_...
Commented by blueroom at 2007/06/14 05:25
정말 진짜... -_-;;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