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 천재들의 공부방법


며칠 전 아는 분 이사하시는 걸 돕다가 "아이비리그 천재들의 공부방법"이라는 책제목을 보았다.
김규항님의 교육에 관한 글을 읽은 터라 더욱 가슴에 와닿았나, 우리나라의 교육 철학이랄까, 현실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웃음이 흘렀다. 뭐, 펼쳐보지도 않았지만, 중고등학생과 그 학부모를 겨냥했을 그 책의 내용이야 뻔하고... 아이비리그를 다니면 천재라는 생각, 혹은 천재들은 아이비리그에 다닌다는 생각이 얼마나 사대주의적이고 학교 줄세우기 습관의 반영인가는 굳이 풀어 쓸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천재"라는 말이 가지는 우리 교육에서의 미묘한 뉘앙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천재라는 말은 하늘이 내린 인재라는 뜻이다. 그들은 늘 쉬 배우고, 하나를 배우면 열을 꿰뚫을 수 있는, 다른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뛰어난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과는 공부의 양도, 질도 다르다. 보통사람들이 교과서를 붙잡고 낑낑거리고 있을 때, 그들은 교과서에 인용된 원서들을 술술 읽고, 비판하고, 자신만의 이론을 세우고, 교육제도의 틀이나 내용과는 별 관계없이 자신만의 업적을 쌓아간다. 다른 사람들이 색칠공부를 할 때, 빛과 색의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낸다. 보통 사람들이 짜증을 내면서 건반에 손을 적응시킬 때, 그들은 자유자재로 난곡을 연주하고, 작곡하며 행복해한다. 이들은 그야말로 인간이 만든 제도를 뛰어넘는 비범함을 가진 이들이다. 뭐, 진짜 천재인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노력의 산물인지, 혹은 그 둘의 조합인지, 어느 정도 똑똑해야 천재라고 할 수 있는지 따위는 쓸데없는 의문이다. 천재가 아닌 이들만 그런 것을 궁금해한다. 천재들은 자기가 천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아마도 알지 않을까? -_-;;) 문제는 그러한 천재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 채로 우리는 계속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러한 비범한 겉모습을 따라하면 우리도 천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아니, 천재가 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한 인간이 보람되게 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욕심이 단지 많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면서 살고자 하는 욕심이라면 무슨 해가 될까마는,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비뚤어진 교육제도와 엮여있다는 데에서 생긴다. 학벌사회에 바탕을 둔 줄세우기 교육제도, 경쟁적인 교실에서 성공이라는 것, 천재 혹은 수재가 된다는 것은, 주어지는 지식을 잘 외우고, 시험을 잘 보고, 다른 이들이 말하는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자신의 재능이나 관심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천재들의 공부방법 알아서 뭐에 쓰나. 그들의 비범함은 노력으로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노력으로, 방법론의 개발로 따라갈 수 있다면 그들은 이미 천재가 아닌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말하는 이름있는 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천재" 소리 듣고, 그들의 공부방법을 포장해서 파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이 획일화된 사회의 사다리를 한 다리라도 더 올라가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천재"들을 보면서 얻는 유일한 소득인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교육철학의 현주소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과학고등학교라는 제도가 적절하지 싶다. 본래 수재들을 발탁해서 양질의 교육을 통해 과학입국을 건설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중학교, 초등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과학고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마치 성공의 지름길인양, 아이의 재능보다는 좋은 학교에 보낸다는 그 자체를 중요시하면서 학교라는 제도를 앞질러 공부를 시키고, 과학고 입시를 위한 전문 학원들이 생겼다. 그렇게, 과학고는 좋은 교육을 받고, 높은 점수를 얻고, 좋은 의대에 진학하는 길목으로 전락했다. 그저, 수재를 발굴한다기보다는 나라 전체의 교육 커리큘럼을 2-3년씩 앞당기는데 기여한 꼴이다. 수학, 과학을 뛰어나게 잘 하는 아이들을 뽑지 못하고, 그저 선행학습을 충실히 하는 아이들을 데려다 교육시키는, 그런 과학 영재 교육,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물론 같이 선행학습을 해도 따라갈 능력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겠지만, 사실 그 진정한 차이는 아이의 재능이나 관심보다는 부모의 열성과 좋은 학원, 경제적 능력 따위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것, 다들 아는 사실이다.

천재라는 환상을 좇으면서, 그 환상을 줄세우기식 교육풍토에서 실현시키려고 하면서 우리는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아이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재능을 찾아가기를 도와주지 못할 망정, 어른들이 생각하는 "가치있는" 교육을 강요하느라, 아이들의 진정한 재능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아이가 천재라면, 우리의 도움이 최소한에 그치더라도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아이가 천재가 아니라면, 선행학습이니, 과외니 하는 것, 그저 아이에게 짐만 지우는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아이가 천재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 천재이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천재에게 불리한 줄세우기 교육을 고집하는 것일까? 하나의 기준, 하나의 사다리만을 바라보며, 그 경쟁에서 탈락하면 평생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이런 교육이 그야말로 천재가 자라나기에 가장 부적절한 교육 환경이 아닐까? 사람이 모두 다르게 태어나는데, 왜 그 서로 다른 능력과 관심을 키워주지 못하나...

그냥, 이삿짐 한 번 날라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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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room | 2007/06/05 04:13 | Trapez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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