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블로그에 촛불을 달며......"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만, 글 수정하는 게 오래 걸려서 다시 올립니다. 공권력이 살수차를 쓰고 일부 폭력 진압이 있었다고 해서 다시 올리는 김에 제목도 더 자극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길지만, 읽고 추천 쎄워주삼.]
0. 답답하고나.
전망글을 고치려고 들어왔다가 새로 뜨는 뉴스들을 보고 답답해서 새글을 쓰기로 시작했다. 허지웅씨처럼 촌철살인의 글을 쓸 능력도 없고, 다른이들처럼 현장에서 생중계를 할 상황도 안 되지만, 뚱딴지 같은 국가경쟁력 타령이나 군사위기 따위의 글이 올라오고, "민심수습용" 장관 경질 수준에서 어떻게 마무리를 해보려는 모양이라는 걸 보고는 한숨 쉬는 거 말고 좀더 뭘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손가락으로나마 주절거린다. 우선, 미국 얘기를 좀 쓴다. 그리고 각 기사에 대해 차례로 짤막짤막하게...
1. 미국 이야기
일단, 미국은 존나 넓은 나라다. 사람도 많고,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라 그 다양성도 엄청나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분위기는 그냥 서로 피해 안 주면 상관말고 살자, 뭐 이런 분위기 되겠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면접 볼 때마다 물어보는 결혼 했냐, 애 있냐 따위의 이야기 여기서 물어보면 바로 문제 생긴다. 내 일 하는 능력이랑 상관없는 거 알아서 뭐하려고 하냐고, 무슨 이유를 달아서 차별하려고 하냐고. 당연 회사에서 회식 같은 것도 거의 없고, 있어도 다들 주말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목요일 저녁으로 잡는다. 유태인이 많은 회사는 특히 더 그렇고.
거기에 더해서 미국애들은 자기네 시스템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깔고 그 시스템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이를테면, 동사무소에서 한두시간 기다려서 "서류 하나 빠졌네요, 가져오세요."라는 말 듣고 돌아서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썩어문드러지는 냄새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도 우리 동네는 세계 최고의 도시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공항에서 비행기 밀려서 몇 시간 기다려도 투덜투덜할 뿐, 누구 하나 항공사 직원, 공항 직원한테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 같으면 벌써 뒤집어지고 남았을텐데도, 다들 그래야 되나보다 하고 산다.
이렇게 두 가지가 겹쳐지면서, 미국은 일단 무관심의 분위기가 기본이다. 당연히 개인의 자유가 거의 절대적으로 존중되는 분위기고, 따라서 개인의 책임도 요구된다. 그래서 다들 일이 막장까지 가기 전엔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막장까지 가면 책임질 사람 찾아내서 묵사발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수없이 이걸 피해가는 인간들이 있고, 시스템을 조롱하는 자들이 넘치지만, 어쨌든 원칙론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이해하면, 왜 광우병이 미국에서 그렇게 큰 이슈가 되지 못하는지 이해가 쪼금은 될 거다. 뭐, 광우병이 걱정되면 개인이 알아서 안 먹으면 되지, 왜 다른 사람 귀찮게 하나, 그런 생각이다. 정부는 그런 소비자들을 위해서 유기농 인증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관리한다. 살만큼 사는 사람들, 알만큼 아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쇠고기니 닭고기니 다 줄였다. 그나마 먹는 것도 유기농 인증 받은 거나 호주산 먹는다. 그럼, 간접 소비는? 워낙 개인의 권리 (여기서 개인은 각 회사의 이익추구권리도 포함하는 거다)가 존중되니, 딱히 과학적인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말 많은 제약회사의 각종 약과 그에 따른 부작용 스캔들도 다 그런 맥락이고. 거기다가 엄청난 로비와 광고 때문에 국회도, 언론도 제 기능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배운 사람, 시간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은 알아서 피하고, 아닌 사람은 그냥 믿고 먹는, 그런 분위기.
당연히, 이런 틈새에서 광우병 위험 있는 소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주로 가난한 사람들,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비된다. 값싼 햄버거니, 소세지니, 사료니 등등에 들어가는 게 다 그런 고기고, 이제 그것도 말이 점점 많아지니 폐기하기는 아깝고, 소비시키기에는 미심쩍은 고기를 처분하는 방법으로 가공과 수출이 주가 될 수밖에 없다. (검역 시스템은 너무 돈 많이 들고, 그보다는 반대 로비가 거세기 때문에 꿈도 못 꾼다.)
그 틈바구니에 한국이 딱 걸렸다고나 할까. 남 속내도 모르면서 안전하다는 말 덮어놓고 믿고 오케이 하는 한국 정부가 무능한 거지, 미국이 뭘 속이고 한 건 아니다. 얘네들은 원래 그렇게 사는 애들이다. 알아서 자기 힘으로 조사하고, 쓸 수 있는 빽 다 쓰고, 밑천 다 드러나서 한 쪽이 무너질 때까지 버티고 앉아서 협상하고, 한 번 오케이 되면 그걸로 끝나는 거, 그게 얘네들 법칙이다. 미국은 각종 국제 조약에 가장 늦게 가입하는 나라로 악명 높다. 말만 들어도 그럴싸한 인권보호나 인도지원 같은 것에 얘네들은 절대 싸인 안 한다. 왜냐고? 싸인하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지키지 못할 거, 말로만 떠들 거면 아예 싸인을 안 한다는 거다. 물론 싸인하고 지켜서 세계 인권이 향상되고, 인도적 지원이 늘면 좋겠지만, 국내 정치가 어떻게 돌아갈지, 경제가 어떻게 틀어질지, 자기네 헌법재판소가 뭐라고 할 지 모르는데, 덮어놓고 원칙에 동의하는 마음으로 하는 싸인, 싫다, 이런 분위기인 것이다.
2. 국가 경쟁력
김문수라는 사람이 광우병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게 말이 안된다는 얘기부터. 우선, 국가 경쟁력이 (만약에 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 떨어지는 건 맞다. 그러나, 그건 광우병 때문도, 시민들이 거리에서 차가 다니는 것을 막기 때문도 아니다. 국가의 소통 시스템이 망가져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망가진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지,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생각해봐라. 위에 말했던 것처럼 미국애들은, "각자 피터지게 공부하고 연구하고 알아봐서 담판을 짓자. 대신 한번 담판 지으면 말바꾸기 없기다." 이런 태도다. 근데, 그렇게 협상 다 해놓고 수입/수출 하기로 해서 책 덮고 각자 돌아갔는데, 갑자기 저쪽 동네에서 난리치면서 국민들이 무효라고 다시 협상해야한다고 들고 일어난다. 이미 이건 쇠고기를 들여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너 같으면 지네 국민한테 신임도 못 받고, 국민 설득할 능력도 없는 애들이랑 다시 협상하고 싶겠냐? 겨우 협상 해놓으면 돌아가서 돌 맞고 안 된다고 또 떼쓸텐데? 이게 바로 미국 투자자들이 중국을 싫어했던 이유다. 중국에서는 실무진이 하기로 다 해놔도 마지막에 사장 결제하자고 해서 양쪽 사장이 만나면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떼쓴다며? 그런 상황이면 나라도 실무자랑 협상 안한다. 처음부터 사장 나오라고 하지. 그래서 미국이 노무현을 좋아했던 거다. 노무현은 까탈스럽게 이거저거 요구하기는 했어도 한 번 하기로 하면 국내에서 얻어터지더라도 밀어부치는 깡이 있었던 거다.
근데 말이다, 이렇게 쓰다보니까 꼭 이명박이 이 시점에서 밀어부쳐서 끝장을 봐야 국가 경쟁력이 지켜지는 것처럼 읽힐 거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의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명박이 밀어부칠 수 있으려면 뭔가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 안 먹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원칙도 없이, 근거도 없이 기분 내키는대로 한 건 올리고 싶으니까 "쇠고기 수입? 그거 그냥 한다고 하면 타결 되는 거지? 그럼 하자." 이렇게 나오면, 미국은 "어? 얘네 의외로 쉽게 나오네? 왜 이러지? 뭐, 어쨌든, 지네가 알아서 결정했겠지. 우리는 좋지, 뭘." 이러면서 오케이하는 거다. 그러나 당연히 한국 내부에서는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고, 미국은 짜증이 나는 거다. "뭐냐, 다 됐다면서? 자기 동네 교통정리도 못하면서 뭘 나와서 협상하재?" 이렇게 된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밀어부치기에는 앞날이 쇠고기 협상의 반복이다. 미국도 미국대로 짜증나지만,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조그만 나라면 쿠데타를 도와주든지, 시위대 진압하는 걸 도와주든지 할텐데,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라는 나라가, 쇠고기 수입하는 대신 자동차 수출하겠다는 나라가 이렇게 내부 시스템이 엉망이어서야 난처하지 않냐 말이다. 결국 문제는 원칙없는 껀수 올리기와, 그에 대한 국민의 저항,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영하고 있는 정치의 부재, 시스템의 부재, 불신의 사회, 이런 게 바로 국가 경쟁력의 하락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결국 쇠고기 협상 사건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허약한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악용될 수 있는지, 그 허약한 시스템에 "경쟁력"이라는 말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3. 군사위기
후훗, 10년, 20년 전에 먹혔을 수법을 아직도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그러나 사실은 이거 제대로 먹힐까봐 걱정도 조금은 된다.) 우리나라 전쟁하고 있는 거 모르는 사람 있냐? 우리나라가 북한과 무력 대치하고 있고, 동북아시아의 화약고라는 거 모르고 사는 사람 있냐고? 뻔한 얘기다. 문제는 그런 거랑 상관없이 국내 정치가 이꼬라지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지. 근데, 그 뻔한 얘기하면서 사람들 움찔거리기를 노리고, 괜히 유야무야 덮어보려고 하는 잔꾀, 이게 바로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다시 말해준다만, "싸나이면 싸나이답게!" 잘못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라. 도움을 청해라. 잔머리 굴려서 말돌리기 하지 말고.
4. 장관경질
이것도 마찬가지. 이미 문제는 누가 장관이냐, 누가 책임을 지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껀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원칙도 소신도 없이 헤헤 거리며 국민 생활과 직결된 일에 삽질을 하고 있는 게 문제지. 땅부자로 자기 잇속 챙기다가 친한 김에 장관된 사람들 몇 명 바뀌어봤자 이번 사태는 잠깐 지나갈 수 있을지 몰라도 곧 똑같은 문제에 또 맞닥뜨릴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소통의 부재다.
5. 누가 초를 살 돈을 댔냐고? 내가 사줄께.
대통령이 촛불집회 보고를 받고서 한 말은 누가 초를 샀냐, 주동세력이 누구냐 이 따위의 말이었댄다. 전혀 놀랍지 않다. 이명박의 반응으로서는 너무 당연하지 않냐? 자기가 스스로 해본 일이 없는 자가, 자신의 뜻에 의해, 자기 몸으로 길로 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깟 초 얼마나 한다고, 그거 돈 댄 사람을 찾으라는 거냐? 예전에 언젠가 촛불집회 나갔을 때, 길가에서 나누어주는 초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더랬다. 누가 사는 건지 몰랐지만, 아마 비슷한 사람들이 지금도 초를 사서 나르고 있겠지. 경찰 추산 1만명이라며? 한 개에 도매가로 20원, 30원씩 하는 거면, 20, 30만원이겠네? 10만명 모였으면 200, 300만원이겠네? 야, 초 그거 내가 사줄께.
민주화 되는 동안 국민학교 다녔고, 최루탄에 콧물 흘리면서도 누가 왜 그렇게 최루탄을 쏘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이젠 나도 직장 다니면서 돈도 벌고, 신문도 읽을 줄 알고, 누구 말이 말이고, 누구 말이 똥인지도 보인다. 그렇게 나도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했고, 이제 알 것 안다. 국민이 스스로 나서는 일을 가지고 배후세력 찾고, 주동자 잡아오라고 하는 애들한테 내가 말한다. 누군가 회계만 제대로 해주면,
나도 월급쟁이니까 매일은 못하지만, 다음 주말에 촛불집회 할 때까지 누가 확실히 책임지고 구입/분배한다고 계약서만 써주면 내가 대마. (인건비는 비싸서 못대요. 자원봉사자 모집해요. -_-;;;) 자, 내가 초 사는 돈은 대는 거다. (종이컵은 다른 분이 도와주세요.) 이제는 내가 배후인거냐? 돈 수백억씩 BBK에 사기당하고 (자기 주장대로라면 말이지), 선거 자금으로 수천 억씩 쓰면서, 그거 초 몇 개 불켰다고 자금원과 주동자를 찾아내라니, 본인이 하고 있는 말을 본인은 알아듣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래서 내가 이명박을 반대했던 거다. 스스로 정치적으로 얻어낸 경험이 없는 자가, 민주화 항쟁이라는 게 뭔지 관심도 없는 자가, 노조 탄압으로 월급받던 자가, 단지 과거에 가난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난을 딛고 올라왔다는 이미지 하나만으로 권력을 잡으면, 다른 사람 들을 귀가 없는 게 당연하다. 자기가 잘난 줄 아니까, 규제 풀고, 재벌들 좋은 세상 만들면, 자기 돈 잘 벌어서 좋으니까, 사람들은 그런 데도 다들 침묵하고 참아온 것을 너무도 잘 아니까.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왜 모이는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발로 거리로 나설 수가 있는 건지, 돈 벌 수 있는 직장이 있는데 무엇이 불만인 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게다.
그러나 어쩌겠냐, 그의 천박함, 그의 잘못은 이미 그만의 것이 아니다. 이제 그의 부덕은 그를 뽑은 국민들의 몫이고, 국민들만 책임질 수 있다. 어떻게든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이 악순환이 5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6. 무임승차자들에 대한 태도
사태가 이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사로운 이익이 걸려있기에 이명박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그들은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수는 거대하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강력하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도 그랬고, 군사독재 때에도, 민주화의 탈을 쓴 극우시대에도,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매서운 문민정부 때에도 그랬다. 그렇게 비겁한, 혹은 주인의식 없는 그들은 무임승차를 계속해왔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렇게 패배의식 속에서, 소시민의 대부분이 이 땅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개혁/혁명을 혼자서 할 수는 없지만, 꼭 모든 사람이 함께 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온 국민이 모두 함께 일어서지 않는다고 지쳐서는 안된다. 그들은 또 세상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무기력하게 우리를 따라 그들의 "일상"을 즐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얄밉다고 우리가 힘이 빠져서야 되겠나. 그나마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으로 서로를 북돋을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는 과거 어느 국민도 갖지 못했던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좋아하는 "세계 최고"의 강력한 인터넷 네트워킹으로 우리는 지치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옆에 선 이들과 소통하자. 그렇게 한 걸음씩 세상을 바꾸어가자.
그렇다. 이제는 나도 선동가다.
자, 할테면 해봐라.
블루룸,
몸으로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마음만은 여러분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