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여유 & <연금술사>

0.
아주아주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다. 휴가가 끝나고 나서야 얻는 묘한 휴식이라니, 직장 생활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일이 틀림없을 것인데......

<연금술사>라는 책, 반 정도 읽었을 뿐이지만, 아직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왜 그렇게들 열광을 하는지... 영어로 읽으면 좀더 가까이 다가오려나? 포르투갈어/스페인어로 읽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마력이 있는 것을 아닐텐데 말이다. "영적 구도서"라서 그런가? -_-;;; 가끔 적어두고 싶은 구절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구절은 매우 흔하고, 다른 책에서도 많이 베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평가는 보류.)

1.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무척 빨리 배우는 것 같아. 아마도 그래서 그토록 빨리 포기하는지도 몰라. 그래, 그런 게 바로 세상이지."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나는 아직 삶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너무 늦게 깨달으면 안되겠지만, 아직은, 조금 답답하더라도, 이대로가 좋다. 곰곰 궁리하는 것이 꼭 시간 낭비만은 아니다. 인생은 무얼 이루고 끝마쳐야 하는 건 아닐테니까. 좀더 많은 글을 읽고, 좀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좀더 많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아직도 어느 정도 의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결정이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결정을 내리면 그는 세찬 물줄기 속으로 잠겨들어서, 결심한 순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가끔 내가 의식/무의식 중에 내린 결정들을 (의식/무의식적으로) 되돌아볼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분명 그 결정들을 내릴 당시 꿈도 꿔보지 못한 곳에 와 있다. 시간이라는 것을 당최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어서, 그때 내가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혹은 존재하고 있을지조차 알 수가 없는 것이지만, 지금의 내 위치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그 때 결정을 잘 했구나 싶어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일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당연히 지금 짓고 있는 이 미소도 어떤 의미에서는 과정에 대한 미소이다. 가령 10초 후에 내가 근무하고 있는 건물이 무너져버린다거나 하면 내가 지금 짓는 미소 따위는 흔적도 없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가정도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의미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떠한 행복도 궁극적인 "결과"에 대한 만족은 아니라는 것을 환기시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항상 즐길만한 과정을 선택하고 그 과정을 실제로 즐기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의 여부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이 볼 수 있는 "세찬 물줄기"를 보고, 그 물줄기를 즐길 준비/각오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난 음식을 먹는 동안엔 먹는 일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소. 걸어야 할 땐 걷는 것, 그게 다지. 만일 내가 싸워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게 언제가 됐든 남들처럼 싸우다 미련 없이 죽을 거요. 난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게요. 그럼 당신은 사막에도 생명이 존재하며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것은 그 전투 속에 바로 인간의 생명과 연관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요. 생명은 성대한 잔치며 크나큰 축제요. 생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직 이 순간에만 영원하기 때문이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내 말이.

그러나, 길게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해야 내게 닥친 이 순간의 값어치를 보고, 그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다.

3.
"책을 펼칠 때면 언제나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만나게 되는 건 그에게는 하나의 미신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책은 이젠 그에게 그저 무게만 나가는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 "배움에는 행동을 통해 배우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과연, 내가 책에 관한 미신을 던져 버릴 수 있을까? 책은? 나는 세상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 걸까?


블루룸,
긴 휴가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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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room | 2008/05/16 06:21 | Confidant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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