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제도 뜯어보기 (5) 제도의 문제인가?

길고 긴 글 네 꼭지에 걸쳐서 로스쿨 제도가 가질만한 장점과 단점에 대해 이것저것 다루어보았다. 그러나 그 장점 단점 자체에 대해 낙관하거나 비관할 수만은 없는 것이, 로스쿨 제도 자체보다는 다른 요건들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온다는 점을 여러번 언급했다. 법률서비스의 가격이 떨어질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다. 법률시장에의 진입장벽이 높아질 수도 있고, 오히려 낮아질 수도 있다. 법학교육이 다양화되고 사회학, 철학, 인문학, 정치학과 연계되는 깊이가 더해질 수도 있고, 오히려 "돈되는" 학문으로 더욱 좁아질 수도 있다. 제도를 넘어서서 그 성패를 좌우하거나 혹은 장단점의 정도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그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첫째로, 우리가 변호사, 그리고 검사, 판사를 포함한 법조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숫자가 늘어나고 점점 더 굶는 (혹은 굶어죽는다고 주장하는) 변호사가 많아짐에 따라서 점점 바뀌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판사, 검사, 변호사는 "사"자 붙은 하나의 "계층"이다. 다시 말해서 아직 사람들의 마음 속에 법률과 관련된 서비스는 주유소와 같은 종류의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공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로스쿨 제도를 비판하는 글 가운데 월급만 많이 준다면 택시기사도 서로 하려고 지원할 것이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 일리있는 말이긴 하지만, 법조인력에는 돈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의사도, 변호사도, 변리사도 아니요, 도선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인데, 글쎄, 그 전문성은 차치하더라도 항만에서 무전기로 뱃길 봐주는 일이라는 걸 알면 그리 많은 사람들이 덤빌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고등고시를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과 같은 정도로 생각하고, 합격만 하면 나이를 떠나 "영감" 호칭을 붙여주던 것이 불과 10여년 전이며, 임용이 안 되더라도 5급공무원과 같은 급이라고 생각해서 영어공부에도 게으르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도 등을 돌려 취업시장에서 오히려 냉대받던 연수원생을 배출하던 것도 이제 겨우 5년 지났을 뿐이다. 법이라는 것이 "우리가 우리 사회를 만드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 잘못된 판결이 나오고, 노골적인 봐주기가 계속되어도 가서 데모하고 압력 넣어서 그런 이들을 잘라낼 생각은 못하고 그저 법은 그러려니, 다음 선거에나 희망을 걸어보려는 흐지부지한 태도를 버린 것도 기껏해야 문민정부가 시작된 이후 이야기다. (물론 그것도 상당히 좋게 봐주자면 말이다.) 이런 중세적 멘탈리티를 가지고 법조인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들의 성역이 더욱 확고하고 빛나 보이고, 그들과 우리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한쪽은 진입장벽을 높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른 한쪽은 진입장벽을 낮추려고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하필이면 돈이 되는 것이다.

물론 법률가는 사회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 우리가 의대를 안 나와도 의사가 될 수 있다고 하면 묘하게 여길 사람이 많은 것처럼, 미국에서 사람들 붙잡고 한국에서는 법대 안 나와도 변호사, 판사, 검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 묘하게 생각할 게 분명하다. 그만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이고, 따라서 국가와 사회가 함께 교육과정이나 자격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표면에 내세워서 수를 제한하고, 그 숫자에 맞추어서 커트라인을 정하는 것은 결코 같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는 아래서 다시 정리한다.

둘째로, 사회적으로 더욱 높은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받는 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 가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가 있다. 흔히 한국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는 기준은 얼마나 돈이 필요한가보다는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느냐이다. 가난하게, 힘들게 공부하는 이들은, 그들의 어려운 조건을 뛰어넘어서 다른 이들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장학금을 못받게 되고, 이는 그들을 두번 세번 죽이는 셈이다. 공부가 아닌, 한 사람의 잠재력과 그 사람이 걸어온 과거를 보고 그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배짱이나 여유가 한국에는 없다는 말이다. 사회가 이렇다보니, 서로 못 믿고, 낮은 점수로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일단 부정이라고 의심부터 하고 (물론 의심받아 마땅한 이따위 풍토를 조장한 사교육계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래서 대학들은 모두들 "객관적" 지표에 기준을 두고 학생을 뽑으려고 하고, 심지어는 사법시험 출제위원들도 무언가 더욱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문제를 출제하느라 깊이있는 문제, 복잡한 사고체계를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라면 로스쿨 뿐만 아니라 로스쿨 할애비를 들여온다고 해도 법조계 개혁은 커녕 법학 교육의 고질병 내지는 사회 자원의 배분의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셋째로, 새로운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로스쿨의 큰 가닥이랄까, 주제 중 하나는 법률가를 많이 길러내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그 졸업생 숫자부터 걱정하고, 로스쿨 인가를 받을 학교들 숫자부터 계산하는 것은 로스쿨 제도의 큰 장점 하나를 잘라내는 것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 법률가를 많이 길러내서 법조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법률가를 투입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면 왜 시장을 못 믿는가? 왜 벌써부터 경쟁을 두려워하는가?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변호사의 수가 아니라 질이다.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통과하는 학교들만 인가를 해준다면 그 수의 조절은 시장이 알아서 할텐데 말이다. 변호사가 늘어나면 그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지위"보다는 "자격증"이라는 의미를 담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서 사람들의 기대나 가치판단이 달라질텐데, 숫자를 늘여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자신의 기득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보니 경쟁을 두려워하는 것, 그 비겁함이야말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미국의 로스쿨 제도를 가까이서 보고, 한국의 법학교육을 직접 겪어본 이로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요는, 로스쿨 제도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보다는, 우리가 그 제도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더 크다는 점, 이 논쟁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블루룸,
글 옮기는 것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려서야...
이상 2006년에 쓴 씨리즈 글.

by blueroom | 2008/04/12 19:33 | Trapez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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