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사형 존치론자로서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
사형제도 폐지의 논리

0. 나는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사형제도의 본질은 역시 극악무도한 작자들을 죽여 없애는 것이다. 뭐, 특별예방이니 일반예방이니 하지만, 실증적 연구가 어렵고, 뾰족한 연구 결과도 없는 상황이니, 별로 설득력이 없다. 설사 사형제도에 예방의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는 그다지 사형제도 폐지론자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역시 사형제도 찬성론의 본질은 죽어도 싼 것들, 짐승만도 못한 것들은 이 사회에서 죽여 없애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고, 이것은 이미 이성의 문제가 아닌 종교의 문제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들의 출발점이 "인간은 존엄하다, 모든 인간은 생명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명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형에 찬성하는 이들의 출발점은 "죽어도 싼 인간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죽여 없애는 것이 옳다"이다. 나로 말하면, 죽어도 싼 인간들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므로, 기존의 찬성/반대 사이에 걸쳐있는 회색분자라고 해야하나?

우선, 인간의 존엄성(혹은 그 부정)에서 출발하는 기존의 사형제도 반대(찬성)는 하나의 종교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전에도 썼지만,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허상이고, 우리의 믿음,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전제일 뿐, 무슨 불변의 진리라거나 하는 건 아니다. 인간 말고는 아무도 인간 존엄하다고 해주는 존재가 없다. 인간만 인간이 존엄하다고 할 뿐. 개미가 개미들끼리 개미의 존엄성을 믿고 살아가는 것과 그들이 진짜로 존엄한지와는 다른 문제이다. 물론, "존엄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다"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존엄성의 주관성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모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존엄성이라는 것이 주관적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사람에 따라서는 존엄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사람에 따라서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고, 존엄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형시켜야 한다는 말에 무너지게 된다. 이 주장에서는 결국 한 단계 위의 정치적 타협을 할 수밖에 없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민주주의다. 결국 헌법/법률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느 쪽을 믿는 사람이 많은가에 따라서 사형제도의 존폐가 갈리는 것이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진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우리 종교가 더 좋은데, 너희는 왜 그 종교를 믿니?" 수준의 아쉬움밖에 안 남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오판에 관한 이야기는 마지막에만 덧붙이기로 한다. "사형제도에는 찬성하지만, 오판의 위험 때문에 반대한다."라는 말은 하나마나 하다. 그래서,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한다는 것인가, 반대한다는 것인가? 만약 우리 모두가 100% 확신할 수 있는 범인의 극악무도한 범죄가 드러났을 때,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것이다. 사형제도를 논할 때 기본입장은 오판의 가능성을 0으로 두고 시작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점 흐리기 밖에 안된다. 일단 기본적인 논의가 끝난 다음에 현실적인 고려로서 사형제도가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되는 경우랄지, 오판의 가능성이라든지, 비용의 문제 같은 것을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지, 처음 이야기 시작할 때부터 오판 얘기부터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주관적 요소와 확실치 않은, 그리고 악용될 소지가 있는 예방효과라는 요소, 그리고 정치적 악용 내지 오판의 가능성과 같은 위험요소를 빼면 사형제도 존폐 논쟁에 무엇이 남나?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내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에게 할 수 이야기, 그들의 종교를 바꾸도록 설득할 수 있는 말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1. 그 죽어마땅한 인간들을 죽이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

무엇보다,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죽는 건 괜찮은데, 그들을 누군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처럼 찝찝한 게 없다. 아무리 치가 떨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을 저지른 인간이라 해도, 사형제도의 본질상

누/군/가/는/ 그/ 짐/승/만/도/ 못/한/ 존/재/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은 이것에 대해 두 가지를 반론은 제기하는 것 같다. 첫째는, 그런 존재들을 죽여 없애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 정의의 구현이라는 논거. 뭐, 나로서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논점은 그 존재들의 숨통을 끊는 행위가 현행법상 살인이냐 아니냐도 아니고, 그것이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지, 혹은 합헌법률인지가 아니다. 법률문제도, 헌법문제도, 결국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의지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은 정책의 문제, 결심의 문제인 것이다. 당신은 그 죽어도 싼 존재를 정말 다른 어떤 사람이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건가? 당신이 죽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면, 이미 사형제도 존치론의 근간은 흔들린다. 그 숨통 끊는 일을 꼭 본인이 할 필요 없다고 피해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 국가가 무슨 귀신도 아니고, 그 실체는 국가를 이루고 국가의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집합체인데, 그 숨통 끊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누가 되든지 상관없어야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하는 것이니까, 내가 직접 할 필요는 없다, 혹은 내가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해야 한다" 이렇게 나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누군가가 죽인다"에서 "그 누군가는 국가 기관이고, 공무원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이다"로 논점을 옮기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말이다. 당장 "그러면 왜 그런 일을 하는 공무원을 두어야 하는가?", "그 공무원의 직무라는 것이 국가가 해야할 일인가?", "그 공무원은 무엇에 근거해서 그 일을 행하는가?"라는 물음이 들 수밖에 없고, 여기에 "법률로 정했으니까" 수준의 답변은 위에서 말한대로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순환논리밖에 안 된다. 피끓게 만드는 흉악범을 보면서 분노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국가라는 탈을 쓰고 그 흉악범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도, 사형선고를 하는 판사도, 사형을 집행하는 법무부 공무원도, 국가 기관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럴 힘을 부여하고, 그들이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상, 우리도 그 제도의 수혜자이자 후원인인 셈이다. 개인의 분노와 그 분노를 집단 차원에서 해소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분노를 표출하는 것, 이미 이성이 아니고 감성이다.

둘째로, 이러한 지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대응이 곧, 법이 꼭 이성적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맞다. 법은 이성적일 수도 없고, 그래서는 뭐가 안 된다. 법이라는 것이 많은 경우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결국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고, 인간 존엄성이라는 종교의 반영이며, 민주주의라는 절차에서 나오는 이성과 감정의 결합체다. 그러나, 이 논의는 법이라는 제도의 속성과 사형제도의 일반적 적용범위를 보았을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인간은 개인적 차원에서 분노하지, 사회적 차원에서 분노하지 않는다. 사회적 차원에서 분노한다는 말을 쓴다면, 사회 성원 모두가 개인적으로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말일게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을 개인의 합 이상이라고 본다면, 그러한 분노를 꼭 사형제도로 치환시킬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법이라는 게 우리가 세상 살기 위해 만든 규칙인 것이고, 그 규칙을 정할 때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게 한 번 거르는 과정이 없다면, 법은 사적 형벌 집행을 공적 형벌 집행으로 돌러놓은 것 이상은 아닐게다. 굳이 따지자면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이, 특히 피해자의 가족들이, 혹은 피해자 본인이 원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 가장 그 분노를 적정선에서 표출하는 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사형 뿐만 아니라 다른 자유형에 대해서도 같은 논거를 들 수 있다. 사형이 가능하다면, 왜 굳이 징역형을 고집하는가? 분노의 수준에 맞게 그 짐승만도 못한 것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성기를 자르고, 몸을 으깨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만인의 본보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분노 표출 차원에서도, 예방 차원에서도 적절한 것이 아닌가? 왜 사형은 괜찮고,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것은 안 된단 말인가? 사형제도를 존치하는 이들은 이러한 형벌에도 찬성하는 것인가? 혹은 사형제도보다 이런 형벌들이 무언가 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는 이러한 형벌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형벌이라는 것, 현대 국가의 형사법 체계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통일된 척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 그 사이에서 죄의 경중과 인신 구속의 기간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계량화 내지는 객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현대 국가의 형벌 시스템이 이미 어느 정도 순수한 복수의 표출에서 떨어진 제도인데, 왜 굳이 사형에서만 복수의 순수한 표출을 고집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누가 생각해도 죽어마땅한 인간들에게는 단순 절도나 은행 강도, 사기 같은 범죄에서 느껴지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끓어오르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리 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된 데는 우리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분노가 좀 누그러질까?

2. 그 죽어 마땅한 누군가를 만드는 데 우리도 일조했다는 점.

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육을 통해 인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건 경험에 의해, 그리고 어느 정도는 종교로서 믿는 것이니, 이에 반대하시는 분은 차근차근 설명해서 나의 종교를 무너뜨려주기 바란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은 존엄하다는 밑도 끝도 없는 명제보다는 훨씬 귀납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전제로 삼는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쨌든, 인간이 교육을 통해서, 다른 인간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어느 정도 바뀌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틀을 짜나갈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우선, 태어날 때부터 살인자로 태어나는 이들은 제외하고 보자. 교육을 통해서, 순간순간 그에게 어떤 뉘앙스를 가지는 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영향을 통해서 우리가 그 짐승보다 못한 이들을 그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도록 이끄는 데 조그만 기여를 하고 있다면 무리인가? 그러한 인간들이라고 진공속에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그 인간들이 그렇게 되어버리기 전에는 분명 어딘가 그를 바른 길로 (혹은 좀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나는 어리석은가? 언젠가는, 적어도 태어날 때에는 순진무구했던 이들, 혹은 악독하더라도 교육을 통해 바르게 클 수 있었던 이들이 렇게 되어버린 데는 우리 스스로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까?

물론 나도, 당신도 그들을 직접 만난 적이 없을 것이다. 직접 만나기는 커녕, 뉴스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기 전까지 그들의 존재를, 그런 생명체가 이 세상에 같은 하늘을 지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법제도도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법의 구속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직접 만날 필요도 없고, 학교를 다니면서 그 학교의 교육이 사회적으로 인증을 받았는지 직접 검증할 필요도 없다. 승차권의 법적 효력을 따지기 위해 법전을 들여다볼 필요도, 지하철 공사의 자본금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법이라는 것은 본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희미한 연결고리로 연결된 채로 모여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누가 무얼 하는지 모르고 살아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깔려있는, 다같이 딛고 서 있는 바닥 같은 것이다. 그렇게 희미하게 널리 얽혀있는 사회에서, 내가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고 그가 그런 인간 말종이 되는 데 기여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를 잡아야할 임무를 띠고 있는 경찰을 그 자리에 임명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잡는 것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면, 너무 고지식하다고 할 것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남 일에 신경 쓰나? 누가 남이 자기 일에 신경 쓰는 걸 반기나?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부대끼는 것이 현대 사회다. 왜 굳이 인간 말종에 대해서만 복수니, 감정이니 운운하며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걸까? 그 말종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한 최소한을 갖추지 못한 것이 그 본인이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우리는 그의 행동에 아주 조금은 책임이 있다. 그를 인간으로 길러내지 못한 우리의 교육제도가 져야 할 책임이 있고, 그를 미리 막아내지 못한, 그러나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우리의 치안 체계가 져야 할 책임이 있고, 그의 친구, 직장 동료, 그리고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함께 져야 하는 책임이 있다. 아무리 이 책임의 양이 작을지언정, 그 책임의 무게를 무시하고, 모든 죄과를 그 개인에게 넘겨 그의 숨통을 끊어서 복수를 택하는 것,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마도 나는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영화 "American History X"를 너무 깊이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흉악하고 잔혹한 범죄자도 인간이라는 것, 그 인간이 하루 아침에 그런 인간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의 삶에 묻어있는 아픔과 굴절에 눈돌리고 한 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그의 숨통을 끊는 것으로 복수를 단행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 방해가 되는지, 얼마나 우리 시스템의 문제를 덮어 놓는 데, 인간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고쳐 나가는 데 모순되는 행동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이 존엄하다는 당연명제가 아닌, 인간이 부족하다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한다면, 분노와 그 분노의 폭발이 그 인간말종에게는 또 한 번의 소외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3. 사형제도보다 부담이 덜 한 방법으로 그들을 막을 수 있다면......

결론치고는 시시하지만, 그래도 사형제도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사형제도가 없는 나라들이 범죄율이 낮더라"고 말하면, "사형제도가 없어서 범죄율이 낮은 게 아니라, 일반적인 치안이 좋아서 범죄율이 낮은 것"이라고 반박(?)을 한단다. 만약 사형제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면, 그것이 문화든, 교육이든, 치안이든, 그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고, 사람이 모자란다면 사형처럼 화끈한 볼거리로 경각심을 높이는 것도 "경제적"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도 사형제도를 생중계하자는 말은 않는다. 이미 경제적인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돈도, 사람도, 여유도 많아졌다는 말이다. 몹쓸 인간들은 가두자. 그러나 그들을 복수라는 명목으로 쉽게 죽여없애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사람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모르는 사람이 봉변을 당하면 돕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자. 돈을 들여 경찰을 늘이고, 꼼꼼히 우리 주변의 약자들을 돌보자. 그렇게 사형제도 없이 치안이 좋아지는 거, 그게 사형제도보다 "선진적"인 거 아닌가? 선진적이고 싶다면, 선진국처럼 돈도 많이 쓰고, 마음에 여유도 갖고, 그렇게 살 준비를 하자.



블루룸,
또다시 몇 주 미루다 결국 날림으로 마무리...
앗, 오판 등등 안 썼군. 그러나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패스.
-_-;;         

덧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에게 수많은 소설과 영화 중에서 공지영의 소설과 영화 "American History X"를 권합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한지,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두 명제가 얼마나 "죽어도 싼" 인간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어쩌다 이 인간들은 그 꼬라지가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숨을 쉬다 보면, 문득, 사형제도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들에 압도되어, 처음 그들에게 일던 분노는 아주 작은 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인간의 분노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답지 못한 존재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에 대한 분노가 온당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라 느껴서 이 글을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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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room | 2008/04/11 05:01 | Trapeze | 트랙백(3) | 핑백(1)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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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inoci's me2.. at 2008/04/1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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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블루룸) : 나는 존치론과 폐지론 어느 입장도 아니다. 언젠가 사형제도에 관한 토론 수업에서 존치론 입장을 맡아서, 그 때까지의 막연한 폐지론에서 생각이 바뀌긴 했지만...오랜만에 블루룸님 글 읽어서 반가운데, 예시한 소설과 영화가 좀 의외다.(댓글계속)...more

Tracked from Anytime smok.. at 2008/04/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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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 Bluemoon 님의 글 1번의 경우는 동의한다. 자, 누군가는 사형집행을 해야하며, 사형집행을 하는 사람은 또 다른 살인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 사람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은 사형제도를 유지하더라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2번의 경우는, 만약 그 논지가 성립한다면 모든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묻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사회적 책임이 전혀 없는 범죄가 어......more

Tracked from 초록불의 잡학다식 at 2008/04/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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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links for 2008-0.. at 2008/04/1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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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lus at 2008/04/11 06:02
모든 제도의 본질은 결국 공동체 소속원이 공동체에 얼마만큼의 주권을 의탁하는가에 달린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시각하에서 사형제란 결국 인간이 살아있을 권리, 즉 생명권에 대한 국가의 위임이라는 말인데 현대 성문법, 그리고 과거 공화국헌법의 정석이 된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에서 조차 전시등의 계엄상황을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생명권은 국가에 의탁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거든요. 애초에 생명권은 절대로 개인에게서 분리될 수 없는 절대주권이니 만큼 이것을 국가에 위임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사형제를 찬성하는 분들이 과연 자신이 살아있을 권리를 국가에 위임한다는 사형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시고 계실지가 전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1 06:11
blus님, 일등하셨군요. 글을 올린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_-;;;

그러나, 법률 차원에서 보았을 때 사형제도가 특별히 문제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이바르 공화국 헌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 특정 헌법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법공동체의 구성원이 자신의 생명권을 국가에 의탁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이에 대한 사형을 반대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생명권을 절대주권으로 인정하더라도, 자기 방위를 위한 전쟁을 인정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공동체의 안전과, 그 "구성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방위적 전쟁을 하는 경우, 전쟁 상대국의 병사를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물입니다.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구성원이더라도, 특정 행위를 한 경우, 구성원 자격을 박탈하고, 사회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규정하여 사형을 집행한다면, 구성원 개개인의 생명권을 국가에 의탁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론적으로는) 사형제도를 합법화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 법제도는 정치적인 합의에 기반을 둔 것이므로, 법적으로 성립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는 사형제도 논쟁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내지 못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선은 사형제도 자체에 대한 입장을 정한 후에, 그에 대한 법적 구성을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Commented by blus at 2008/04/11 06:45
자주 눈팅하고 있습니다.(웃음)

일단 전 사형제 반대론자입니다. 그 썰을 풀어보자면 말씀하신대로 전시와 같은 소속원들의 생명권이 위협당하는 경우, 국민은 국가에 생명권을 위임합니다. 그리고 그에 준한 범죄사항들이 소속원들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질 시에 과연 사형이 그 범죄사항들에 대한 예방조치로 기능하는지가 결국 사형제 존치와 폐지의 핵에 있죠. 그리고 그에 대한 분석들은 국가별로 갈리구요. 다만 전 그 사항에서 '죽고 싶어하는'인간들에 대한 예방조치로 사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결국 사형제외의 예방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전 사형제의 장점을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행정의 편리성과 기회비용의 효율성.
편히 말하자면 값싸고 편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러한 행정의 단점은 결국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시스템이 그 범죄의 원인을 내적으로 분석할 근거를 그저 값싸게 묻어 버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시스템에 구성원이 주권을 맡기는 이유는 결국 사회의 안정을 바라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시스템은 사회의 안정을 추구해야 하죠. 그리고 사회안정이 깨어졌을 때에는 -완전한 안정은 불가능하다고 보더라도- 결국 시스템은 자신의 존재당위를 지키지 못했고 그러하기에 시스템도 범죄행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blueroom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사형제는 그러한 책임소재를 행정과 금전의 효율이라는 대의하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버리고 책임소재를 소거하는 행정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과연 값싸다는 대의하에 묻히는 것이 옳은지는 개인의 가치관 차이이겠지만 전 그것을 부정적으로보고 그 관념이 지배관념이 되는 사회가 그닥 바람직하게 생각되지는 않네요.
Commented by blus at 2008/04/11 06:49
결국 사회 안정을 붕괴시키는 것은 인간의 절망과 분노일지언데 그 절망과 분노의 원인이 되는 것은 결국 생존기반의 상실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신병적인 것에 기연한 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절망과 분노를 줄이는 것을 목적함에서 복지시스템이 당위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썰이 조금 멀리나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blueroom님의 글에 깊이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었어요.^^
Commented by inly at 2008/04/11 08:5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시네요 : )
그러나 저의 입장은 약간은 다른 것 같아서 그냥 덧글로 몇 자 적어봅니다.
저는 사형을 당하는 사람들(아마도 연쇄살인범쯤 되겠죠)이 죽어도 싸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저나 제 주변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는 별로 인간이 존엄하다고는 믿지는 않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가치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이나 그들이 살아오면서 느낀 좌절감들에 대해서도 깊이 유감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명이 다른 무고한 사람 개개인의 생명과 무게가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그들에게 죽은 사람들도 같이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출옥했을 때의 재범율에 대해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트랙백 된 글에 쓰인 교도소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은 그닥 비현실적인 불안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기징역을 받는대서 범인이 죽을 때까지 형무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급사하지 않는 이상은요. 20대에 들어간 쾌락살인마가 50대에 멀쩡해져서 나와서 사회에 멀쩡하게 잘 적응하고 죽을 때까지 그 어떤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저에게 사형은 다른 사람들의 범죄 예방 차원이 아니라 심각하고 잔인한 연쇄살인마의 재범을 막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생각이 틀렸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요.
'그들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나', '그들을 그런 행동의 근본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와 '그에게 어떤 식으로 책임을 묻는가' '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이런 죄질에 있어서만큼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을 잘라내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요, 저는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라내고나서부터는 세금으로 그의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한다는 점은 그들에게 남은 죗값을 생각하면 좀 탐탁치 않네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4/11 09:37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죠.
Commented by dcdc at 2008/04/11 17:03
인간의 생명이 존엄해지는 것은 서로에게 존엄하게 대해주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하나의 약속이자 문화로서, 존엄하니까 존엄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하게 대하니까 존엄하게 된다는 것이랄까요 ^^;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1 19:48
inly/

무기징역을 받는다고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죽을 때까지 가두어 둘 수 있다면, 그래도 사형제도에 찬성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나", "그들을 그런 행동의 근본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와 "그에게 어떤 식으로 책임을 묻는가", "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별개의 문제라고 하셨는데, 별개의 문제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문제들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요? 적어도 근대국가라면,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자기가 죄값을 치르는 게 원칙일텐데,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그 죄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고찰에는 등돌리고,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게 과연 "정의"인가, 그게 제 문제의식입니다. 그 뒤치다꺼리를 할 돈이 아깝다면, 그 돈을 일치감치 치안에, 교육에, 예방에 쏟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능력이 있는데, 뒤늦게 살인마"만" 탓하는 것, 어찌 보면 비겁하지 않나요?

물론, 20대의 살인마가 50대가 되기까지 제대로 된 인간으로 돌려놓지 못한다면, 교도소라는 곳도 문제이고, 우리가 교도소라는 제도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기대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겠지요. 아무리 애써도 고칠 수 없는, 그 정도 위험하고 잔인한 연쇄살인마라면, 죽을 때까지 가두어두는 것이 바람직하고요.
Commented by 234234223 at 2008/04/11 19:53
네. 둘다 종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부인권을 믿는 나라에 살고 있지요. 천부인권의 개념을 교과서부터 바꿔준다면야 사형제도에 대한 '토론'이 가능하겠지요. 지금은? 사실 전 토론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잘못된 관습과 자성의 움직임의 싸움으로 봅니다.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1 19:56
dcdc/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님의 말씀은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 점, "존엄하게 대하니까 존엄하게 된다"는 것에서 출발하면 "존엄하게 대하기 싫다", 혹은 "존엄하게 대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 있다"로 시작하는 사형제도 찬성론에 대해서 효과적인 발언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약속이자 문화"라는 것이, 사형제도가 버젓이 존치되고 있는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되시려나? 마치, 한 부락에서 조개껍질을 놓고, "이것을 새 화폐로 쓰자"고 약속을 했는데, 40%의 구성원이 "그것은 화폐긴 하지만, 화폐가 아닐 때도 있다"고 한다면, 화폐로서의 조개껍질이 진정 "하나의 약속이자 문화"인지 자체가 헷갈리게 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런 경우, "하나의 약속이자 문화"라는 것을 개개인의 관점과 관계없이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법이고, 우리 법제도가 인간의 존엄성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말도 그런 뜻에서 보면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큰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지요.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1 20:03
234234223/

천부인권을 "누가" "어디까지" 믿는가가 문제입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토론을 위해서 천부인권의 개념을 중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에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헌법과 법률, 대법원 판례가 천부인권과 사형제도는 별개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천부인권은, 말하자면 "조건부" 딱지가 붙어있는 천부인권입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원칙을 배우고, 법을 전공하면서 예외를 배운다고 해야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종교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토론이 가능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잘못된 관습과 자성의 움직임의 싸움"이라는 것도 님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말일 뿐이고, 사형제도 찬성론자들도 똑같은 말을 반대의 의미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그러한 종교적 색채, 믿음에서 출발하는 수사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 인간의 책임감, 이성, 이런 것들에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맞는 접근법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토론하고 설득해야 꼬리표가 붙지 않은 천부인권이라는 종교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dcdc at 2008/04/12 05:26
화폐물신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선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 우린 우리 지갑 안에 들어있는 천원짜리와 만원짜리가 잉크 종류와 크기가 다른 것 말고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무엇보다 이들이 내재적인 가치에서 열배나 되는 차이가 있다고 결코 믿지 않지만 그렇게 '행동'하지요. 그 얘길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2 05:55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내용이 아니라, 그 형식입니다. "헌법"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그것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이라는 것이 우리를 구속할 힘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구속력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법원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기 때문에" 인간이 존엄하다면, 인간을 존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어떤 인간에게는 존엄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법체계는 신화 위에 서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존엄하게 대한다"고 하셨는데, 거기서 "우리"가 누구인지, 과연 그 "우리" 사이에 이견은 없는지 (예를 들면 인간의 존엄성에 예외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그것을 묻고 싶은 것입니다.
Commented by 琳☆ at 2008/04/12 10:26
잘 읽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나마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이런 장문의 글로 사람들을 압박하는(..) 글을 쓰신게 대단해 보이네요.

저 역시 사형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형제도가 이러이러해서 안하는게 좋겠다. 라는 논리적인 근거를 더 달고 싶지만
제가 생각했던것들을 다 적어두셨네요 (....)

덧붙이자면 사형제도를 찬성하시는 분들은 고대의 사형제도 라던가
고문같은것에 대해 조금만 연구를 해 보셨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dcdc at 2008/04/12 11:56
그렇죠. 물신주의가 그것이죠. 신화 위에 서있지만 믿음보다는 행동으로 가동하죠. 저도 그 이야기 이상 갈 생각이 없습니다 :) 우리 사이의 이견이야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 존엄성의 획득을 위해 믿음이 아닌 행동함으로써 그 영향력이 넓어질 것이라는 이야기 밖에 안됩니다 제 얘기는. 별로 깊이 들어갈 생각도 없고요.
결국 본문 마지막에 우행시의 일독을 권하시는 것도 그 행동과 무슨 다를 바가 있는 지 오히려 여쭤보고 싶을 정도인데요 ^^; 저는 본문 전반에 동의를 합니다만 단지 그 존엄성이란 것의 그 기반이 보이는 것처럼 부실하기만 한 것이 아닌 것 같다고-단순한 이론적 롤모델로서가 아닌 행위의 동인으로써, 또한 목표로써 존재하는 것이 화폐물신주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고 역으로 좀 강조를 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 덧글이 그렇게 중요한 덧글도 아닌데 길게 달아 주셔도 ^^;
Commented by intherye at 2008/04/12 13:38
심지어 전시에도, 대치중인 적군은 죽일지언정, 원칙적으로나마 포로로 잡힌 적군은 안 죽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인질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헤드샷...이라면 또 몰라도, 사형수를 죽이는 것은 전쟁과의 비교와도 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도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종교를 믿는 신도입니다만, 제가 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그것이 현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원리들과 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
Commented by 코난 at 2008/04/12 13:44
죽어마땅한누군가를만들기위해 제가 직간접적으로 일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합니다. 하지만 죽어마땅한 행동을 하기로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죽어마땅한 사람 자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싶군요. 또한 사이코패스나 유전적 문제 등으로 인해 환경적 요인과 관계없이 살인을 하는 사람들은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mayolove at 2008/04/12 14:30
아주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chatmate at 2008/04/12 19:17
8mm 라는 영화를 보면 반대의 이야기가 나오죠. 세상에는 '그냥' 나쁜 놈이란 것도 있다는 거죠.

영화 속의 악당이 주인공에게 잡혔을때 악당은 주인공을 비웃습니다. 자기한테 가정 불화나 어릴적 마음의 상처라도 있을 줄 알았냐고. 악당은 성실하게 평범한 삶을 살아온 너무 평범한 일반인이었거든요.
Commented by AvisRara at 2008/04/12 20:45
저 역시 사형에 반대하고 내용에 있어서도 전체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위의 내용은 역으로 적용할 때(2에서 1로), 사형 찬성의 입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회 성원으로서 '죽어 마땅한 인간'의 출현에 일조했기 때문에 그 책임으로 확대된 개인인 그에게 사회적 합의에 따른 제재를 가하는 것입니다. 방식에 있어서 비교적 높은 사회적 합의체(국가)는 행정적, 경제적 편의에 따라 죽음을 형벌로 선택하였고 사회적 자산을 투입하여 집행의 대리인을 고용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두번째로 드신 근거는 개인의 자유를 과소평가하여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다고 할 지라도 책임을 폭력을 동반한 강요된 희생을 통해 편하고 값싸게 지려하는 것 자체를 긍적적이지 못하며 성숙하지 못한 자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다른 가치관의 문제가 생깁니다.

말씀하신대로 이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종교(^^;)를 믿고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가치들보다, 예컨데 <사회의 안정>과 같은, 더 높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종교지요. 저는 그 종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사형에 동의하여 그것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 사형을 반대합니다. 좋게 말하면 제가 믿음대로 행동하여 가치가 실존하게 하는 것이지만...

더 솔직히 말한다면 어떤 사람이 죽어 마땅하다고 동의함으로써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인간 존엄성으로 이어지는)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4/13 09:03
트랙백하셨기에 다른 글 하나도 트랙백해둡니다. 예전에 써놓았던 글이고 이미 읽으셨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Commented by jeff at 2008/04/13 14:43
흠... 사형제 반대하다가, 데드 맨 워킹을 보는 내내,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의 숀팬이 강간 뒤에 여자 머리에 샷건을 날릴 때, 지금까지 내내 이성적이고 가슴 따뜻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지더군요. 이성적이고 정치적인 결정과 개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은 다르더군요. 저는 사형제에 대해 '정치적'인 태도로 인해 반대하지만, 아주 개인적으로 사형에 찬성합니다. (사형제는 헌재에서 합헌 판결이었고 일부 소수의견은 사형집행인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하더군요. 그 사형제 집행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사형집행을 거부하는 경우 시민배심원처럼 시민집행대리인 제도를 만들었으면 하는 잡생각도 듭니다 ㅋㅋ)
Commented by 주차장 at 2008/04/13 15:52
아주아주 개인적인 일일 수 있겠지만, 가족이 당한 경우에 그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는 이상 저런 문제는 설득이 어려운 것입니다. 가족뿐만이 아니라 친지라던지 이웃이 당했을 경우에도 그렇죠. 즉,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의 주변 반경의 얼마간은 사형시켜야해라는 생각을 하게 될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가 극소수이고, 얼마되지 않는다면 모를까. 몇십년간의 누적과 잊혀지지않는 기억들의 쌓임은 상당 퍼센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차피 사회라는 것은 합의에 의해서 지속되는 것이라 보았을때 그러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상당수라면 그들의 의견은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3 20:20
intherye/

국제법상 포로를 죽이지 않는 것도, 일종의 합의이자 가치판단에 바탕을 둔 것이지요. 극단적으로, 포로수용소에 있는 포로를 퇴패하는 군대가 몰살시키고 도망가는 경우와 좀더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고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형제도가 반드시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원리"와 상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근본원리와 일관성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3 20:23
코난/

유전적 질환이나 사이코 패스를 가려내고 미리미리 그들을 치료/격리 시키는 것도 사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의에서 뺐습니다. (유전적 질환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다른 문제가 있어서 사회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면 죽여서 없애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는지요?)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3 20:27
chatmate/

8mm라는 영화를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는 게 맞다면, (1) 그 영화에 나오는 범인은, 사형제도가 있고없고와 상관없이 그런 짓을 할 인간입니다. (2) 그런 인간을 잡아서 죽여없애는 것이 옳은가가 문제인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나쁜" 인간의 어디까지가 "그냥 나쁜"인가를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그냥 나쁜 인간도 결국은 돈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시작해서 극단까지 치달은 경우가 아닌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얼마나 잘못 굴러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된다는 것이지요.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3 20:30
AvisRara/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3 20:43
초록불/

글 잘 읽었습니다. 내용에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요. 인간은 이성만으로 이루어진 동물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이라는 것이 인간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 주장의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분노에 바탕을 둔 사형제도를 유지시키는 것이 현재의 다른 행형 틀과 과연 맞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노에 중점의 둔 사형제도의 경우, 아무래도 피해자 혹은 그 유족들의 아픔이 가장 먼저일텐데, 피해자가 그를 용서한다면 어떻게 되는지요? 혹은, 피해자들이 분노하는 경우 무기징역이 사형으로 바뀔 수도 있는지요? 국가가관에 처벌권을 이양하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서 출발한다면, 피해자와 가족의 분노를 100% 반영할 수 없다는 단점도 같이 지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적인 형벌을 인정하지 않는 다음에야 어디엔가 선을 그을 수밖에 없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을 "복수"에 기대어 죽여없애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사적인 복수의 대리인으로서 국가의 사형집행보다는, 차라리 "친절한 금자씨"가 솔직하지요. 그렇게 되면, 사적인 복수가 난무하는, 혹은 국가가 사적인 복수를 허가하는 형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아야 하겠습니다만......
Commented by blueroom at 2008/04/13 20:53
초록불, jeff, 주차장/

결국 인간의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분노의 해소가 무조건 야만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서도 안 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사회가 그렇게 결정했다는 이유로 다른 이의 복수심을 제 손으로, 한 생명체의 숨통을 끊는 방식으로 옮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분노와 이성의 괴리에 대해 사형제도는 분노의 편을, 저는 이성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제가 이성의 편을 드는 이유는 법이라는 것, 제도라는 것은 우리가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그 방법과 참작해야 할 것들을 정해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입장에서 좀더 이성적으로, 좀더 길게, 넓게 바라보려고 하면, 아무래도 구체적인 상황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나를 생각하기는 어렵게 되니까요.

이 이상으로 저의 "종교"를 말하려면 좀더 많이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가치판단일테고, 어느 종교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가에 따라서 결판이 나는 문제니까, 제가 여기서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Commented by 삵군 at 2008/04/14 00:57
저도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제가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
"죽이는 것보다 차라리 빵에 처박혀서 죄를 뉘우치는게 진정한 죗값을 치루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한명을 세상에서 지우는거보다 죄를 뉘우치게 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Commented by intherye at 2008/04/14 21:16
포로를 몰살시키고 도망가는 짓은, 오늘날 문명국의 군대라면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보통 사형과 전쟁의 비교는 국가에게 인명을 살상할 자격이 공식적으로 주어질 수 있느냐 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만. 기왕 비교하는 거 자기 방위라는 명분 하에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자면, 포로에 해당하는 사형수에게는 유비의 성립이 어려우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기야 혹시 침략 당하기 전에 확실히 미리 침략하겠다는 논리를 방위전이라고 부르는 미친 세상에 뭔들 어렵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죠.

민주사회의 기본가치들과 충돌한다는 말씀은,

1) 국가는 필요불가결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구성원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런데 살인은 궁극의 폭력.)
2)심지어 필요불가결한 상황에서도 그 수위가 최소한도로, 적어도 적정 수준에서 제한되어야만 한다는 점. (그런데 사형은 최소한도는커녕 최대한의 수준.)
을 들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찬성론자들이라도 제정신 박혔다면 동의하겠죠. 그래서 사형 찬성론자들은 사형이라는 최고 수준의 폭력이야말로 바로 사형수들에 대한 공권력 행사의 "적정 수준"이라고 납득을 시켜야만 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그걸 납득 할 수 없는 거구요. ^^

전두환도 "폭도"들에 대한 발포가 적정 수준의 공권력 행사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듯합니다. 가능한 최대치를 적정 수준이랍시고 설정했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줄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재 많다고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닌 거죠. 저는 이게 어느 쪽이 더 많은가보다도 누가 더 옳은가에 따라서 결판이 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수결로 정할 일 같았으면 진작에 시청앞 광장에 잘린 머리통을 줄줄이 걸어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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