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존치론자로서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
사형제도 폐지의 논리
0. 나는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사형제도의 본질은 역시 극악무도한 작자들을 죽여 없애는 것이다. 뭐, 특별예방이니 일반예방이니 하지만, 실증적 연구가 어렵고, 뾰족한 연구 결과도 없는 상황이니, 별로 설득력이 없다. 설사 사형제도에 예방의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는 그다지 사형제도 폐지론자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역시 사형제도 찬성론의 본질은 죽어도 싼 것들, 짐승만도 못한 것들은 이 사회에서 죽여 없애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고, 이것은 이미 이성의 문제가 아닌 종교의 문제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들의 출발점이 "인간은 존엄하다, 모든 인간은 생명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명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형에 찬성하는 이들의 출발점은 "죽어도 싼 인간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죽여 없애는 것이 옳다"이다. 나로 말하면, 죽어도 싼 인간들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므로, 기존의 찬성/반대 사이에 걸쳐있는 회색분자라고 해야하나?
우선, 인간의 존엄성(혹은 그 부정)에서 출발하는 기존의 사형제도 반대(찬성)는 하나의 종교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전에도 썼지만,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허상이고, 우리의 믿음,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전제일 뿐, 무슨 불변의 진리라거나 하는 건 아니다. 인간 말고는 아무도 인간 존엄하다고 해주는 존재가 없다. 인간만 인간이 존엄하다고 할 뿐. 개미가 개미들끼리 개미의 존엄성을 믿고 살아가는 것과 그들이 진짜로 존엄한지와는 다른 문제이다. 물론, "존엄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다"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존엄성의 주관성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모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존엄성이라는 것이 주관적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사람에 따라서는 존엄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사람에 따라서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고, 존엄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형시켜야 한다는 말에 무너지게 된다. 이 주장에서는 결국 한 단계 위의 정치적 타협을 할 수밖에 없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민주주의다. 결국 헌법/법률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느 쪽을 믿는 사람이 많은가에 따라서 사형제도의 존폐가 갈리는 것이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진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우리 종교가 더 좋은데, 너희는 왜 그 종교를 믿니?" 수준의 아쉬움밖에 안 남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오판에 관한 이야기는 마지막에만 덧붙이기로 한다. "사형제도에는 찬성하지만, 오판의 위험 때문에 반대한다."라는 말은 하나마나 하다. 그래서,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한다는 것인가, 반대한다는 것인가? 만약 우리 모두가 100% 확신할 수 있는 범인의 극악무도한 범죄가 드러났을 때,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것이다. 사형제도를 논할 때 기본입장은 오판의 가능성을 0으로 두고 시작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점 흐리기 밖에 안된다. 일단 기본적인 논의가 끝난 다음에 현실적인 고려로서 사형제도가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되는 경우랄지, 오판의 가능성이라든지, 비용의 문제 같은 것을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지, 처음 이야기 시작할 때부터 오판 얘기부터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주관적 요소와 확실치 않은, 그리고 악용될 소지가 있는 예방효과라는 요소, 그리고 정치적 악용 내지 오판의 가능성과 같은 위험요소를 빼면 사형제도 존폐 논쟁에 무엇이 남나?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내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에게 할 수 이야기, 그들의 종교를 바꾸도록 설득할 수 있는 말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1. 그 죽어마땅한 인간들을 죽이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
무엇보다,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죽는 건 괜찮은데, 그들을 누군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처럼 찝찝한 게 없다. 아무리 치가 떨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을 저지른 인간이라 해도, 사형제도의 본질상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은 이것에 대해 두 가지를 반론은 제기하는 것 같다. 첫째는, 그런 존재들을 죽여 없애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 정의의 구현이라는 논거. 뭐, 나로서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논점은 그 존재들의 숨통을 끊는 행위가 현행법상 살인이냐 아니냐도 아니고, 그것이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지, 혹은 합헌법률인지가 아니다. 법률문제도, 헌법문제도, 결국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의지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은 정책의 문제, 결심의 문제인 것이다. 당신은 그 죽어도 싼 존재를 정말 다른 어떤 사람이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건가? 당신이 죽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면, 이미 사형제도 존치론의 근간은 흔들린다. 그 숨통 끊는 일을 꼭 본인이 할 필요 없다고 피해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 국가가 무슨 귀신도 아니고, 그 실체는 국가를 이루고 국가의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집합체인데, 그 숨통 끊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누가 되든지 상관없어야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하는 것이니까, 내가 직접 할 필요는 없다, 혹은 내가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해야 한다" 이렇게 나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누군가가 죽인다"에서 "그 누군가는 국가 기관이고, 공무원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이다"로 논점을 옮기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말이다. 당장 "그러면 왜 그런 일을 하는 공무원을 두어야 하는가?", "그 공무원의 직무라는 것이 국가가 해야할 일인가?", "그 공무원은 무엇에 근거해서 그 일을 행하는가?"라는 물음이 들 수밖에 없고, 여기에 "법률로 정했으니까" 수준의 답변은 위에서 말한대로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순환논리밖에 안 된다. 피끓게 만드는 흉악범을 보면서 분노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국가라는 탈을 쓰고 그 흉악범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도, 사형선고를 하는 판사도, 사형을 집행하는 법무부 공무원도, 국가 기관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럴 힘을 부여하고, 그들이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상, 우리도 그 제도의 수혜자이자 후원인인 셈이다. 개인의 분노와 그 분노를 집단 차원에서 해소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분노를 표출하는 것, 이미 이성이 아니고 감성이다.
둘째로, 이러한 지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대응이 곧, 법이 꼭 이성적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맞다. 법은 이성적일 수도 없고, 그래서는 뭐가 안 된다. 법이라는 것이 많은 경우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결국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고, 인간 존엄성이라는 종교의 반영이며, 민주주의라는 절차에서 나오는 이성과 감정의 결합체다. 그러나, 이 논의는 법이라는 제도의 속성과 사형제도의 일반적 적용범위를 보았을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인간은 개인적 차원에서 분노하지, 사회적 차원에서 분노하지 않는다. 사회적 차원에서 분노한다는 말을 쓴다면, 사회 성원 모두가 개인적으로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말일게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을 개인의 합 이상이라고 본다면, 그러한 분노를 꼭 사형제도로 치환시킬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법이라는 게 우리가 세상 살기 위해 만든 규칙인 것이고, 그 규칙을 정할 때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게 한 번 거르는 과정이 없다면, 법은 사적 형벌 집행을 공적 형벌 집행으로 돌러놓은 것 이상은 아닐게다. 굳이 따지자면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이, 특히 피해자의 가족들이, 혹은 피해자 본인이 원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 가장 그 분노를 적정선에서 표출하는 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사형 뿐만 아니라 다른 자유형에 대해서도 같은 논거를 들 수 있다. 사형이 가능하다면, 왜 굳이 징역형을 고집하는가? 분노의 수준에 맞게 그 짐승만도 못한 것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성기를 자르고, 몸을 으깨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만인의 본보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분노 표출 차원에서도, 예방 차원에서도 적절한 것이 아닌가? 왜 사형은 괜찮고,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것은 안 된단 말인가? 사형제도를 존치하는 이들은 이러한 형벌에도 찬성하는 것인가? 혹은 사형제도보다 이런 형벌들이 무언가 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는 이러한 형벌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형벌이라는 것, 현대 국가의 형사법 체계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통일된 척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 그 사이에서 죄의 경중과 인신 구속의 기간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계량화 내지는 객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현대 국가의 형벌 시스템이 이미 어느 정도 순수한 복수의 표출에서 떨어진 제도인데, 왜 굳이 사형에서만 복수의 순수한 표출을 고집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누가 생각해도 죽어마땅한 인간들에게는 단순 절도나 은행 강도, 사기 같은 범죄에서 느껴지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끓어오르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리 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된 데는 우리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분노가 좀 누그러질까?
2. 그 죽어 마땅한 누군가를 만드는 데 우리도 일조했다는 점.
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육을 통해 인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건 경험에 의해, 그리고 어느 정도는 종교로서 믿는 것이니, 이에 반대하시는 분은 차근차근 설명해서 나의 종교를 무너뜨려주기 바란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은 존엄하다는 밑도 끝도 없는 명제보다는 훨씬 귀납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전제로 삼는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쨌든, 인간이 교육을 통해서, 다른 인간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어느 정도 바뀌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틀을 짜나갈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우선, 태어날 때부터 살인자로 태어나는 이들은 제외하고 보자. 교육을 통해서, 순간순간 그에게 어떤 뉘앙스를 가지는 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영향을 통해서 우리가 그 짐승보다 못한 이들을 그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도록 이끄는 데 조그만 기여를 하고 있다면 무리인가? 그러한 인간들이라고 진공속에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그 인간들이 그렇게 되어버리기 전에는 분명 어딘가 그를 바른 길로 (혹은 좀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나는 어리석은가? 언젠가는, 적어도 태어날 때에는 순진무구했던 이들, 혹은 악독하더라도 교육을 통해 바르게 클 수 있었던 이들이 렇게 되어버린 데는 우리 스스로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까?
물론 나도, 당신도 그들을 직접 만난 적이 없을 것이다. 직접 만나기는 커녕, 뉴스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기 전까지 그들의 존재를, 그런 생명체가 이 세상에 같은 하늘을 지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법제도도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법의 구속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직접 만날 필요도 없고, 학교를 다니면서 그 학교의 교육이 사회적으로 인증을 받았는지 직접 검증할 필요도 없다. 승차권의 법적 효력을 따지기 위해 법전을 들여다볼 필요도, 지하철 공사의 자본금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법이라는 것은 본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희미한 연결고리로 연결된 채로 모여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누가 무얼 하는지 모르고 살아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깔려있는, 다같이 딛고 서 있는 바닥 같은 것이다. 그렇게 희미하게 널리 얽혀있는 사회에서, 내가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고 그가 그런 인간 말종이 되는 데 기여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를 잡아야할 임무를 띠고 있는 경찰을 그 자리에 임명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잡는 것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면, 너무 고지식하다고 할 것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남 일에 신경 쓰나? 누가 남이 자기 일에 신경 쓰는 걸 반기나?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부대끼는 것이 현대 사회다. 왜 굳이 인간 말종에 대해서만 복수니, 감정이니 운운하며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걸까? 그 말종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한 최소한을 갖추지 못한 것이 그 본인이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우리는 그의 행동에 아주 조금은 책임이 있다. 그를 인간으로 길러내지 못한 우리의 교육제도가 져야 할 책임이 있고, 그를 미리 막아내지 못한, 그러나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우리의 치안 체계가 져야 할 책임이 있고, 그의 친구, 직장 동료, 그리고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함께 져야 하는 책임이 있다. 아무리 이 책임의 양이 작을지언정, 그 책임의 무게를 무시하고, 모든 죄과를 그 개인에게 넘겨 그의 숨통을 끊어서 복수를 택하는 것,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마도 나는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영화 "American History X"를 너무 깊이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흉악하고 잔혹한 범죄자도 인간이라는 것, 그 인간이 하루 아침에 그런 인간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의 삶에 묻어있는 아픔과 굴절에 눈돌리고 한 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그의 숨통을 끊는 것으로 복수를 단행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 방해가 되는지, 얼마나 우리 시스템의 문제를 덮어 놓는 데, 인간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고쳐 나가는 데 모순되는 행동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이 존엄하다는 당연명제가 아닌, 인간이 부족하다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한다면, 분노와 그 분노의 폭발이 그 인간말종에게는 또 한 번의 소외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3. 사형제도보다 부담이 덜 한 방법으로 그들을 막을 수 있다면......
결론치고는 시시하지만, 그래도 사형제도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사형제도가 없는 나라들이 범죄율이 낮더라"고 말하면, "사형제도가 없어서 범죄율이 낮은 게 아니라, 일반적인 치안이 좋아서 범죄율이 낮은 것"이라고 반박(?)을 한단다. 만약 사형제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면, 그것이 문화든, 교육이든, 치안이든, 그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고, 사람이 모자란다면 사형처럼 화끈한 볼거리로 경각심을 높이는 것도 "경제적"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도 사형제도를 생중계하자는 말은 않는다. 이미 경제적인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돈도, 사람도, 여유도 많아졌다는 말이다. 몹쓸 인간들은 가두자. 그러나 그들을 복수라는 명목으로 쉽게 죽여없애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사람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모르는 사람이 봉변을 당하면 돕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자. 돈을 들여 경찰을 늘이고, 꼼꼼히 우리 주변의 약자들을 돌보자. 그렇게 사형제도 없이 치안이 좋아지는 거, 그게 사형제도보다 "선진적"인 거 아닌가? 선진적이고 싶다면, 선진국처럼 돈도 많이 쓰고, 마음에 여유도 갖고, 그렇게 살 준비를 하자.
블루룸,
또다시 몇 주 미루다 결국 날림으로 마무리...
앗, 오판 등등 안 썼군. 그러나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패스.
-_-;;
덧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에게 수많은 소설과 영화 중에서 공지영의 소설과 영화 "American History X"를 권합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한지,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두 명제가 얼마나 "죽어도 싼" 인간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어쩌다 이 인간들은 그 꼬라지가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숨을 쉬다 보면, 문득, 사형제도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들에 압도되어, 처음 그들에게 일던 분노는 아주 작은 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인간의 분노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답지 못한 존재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에 대한 분노가 온당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라 느껴서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사형제도 폐지의 논리
0. 나는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사형제도의 본질은 역시 극악무도한 작자들을 죽여 없애는 것이다. 뭐, 특별예방이니 일반예방이니 하지만, 실증적 연구가 어렵고, 뾰족한 연구 결과도 없는 상황이니, 별로 설득력이 없다. 설사 사형제도에 예방의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는 그다지 사형제도 폐지론자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역시 사형제도 찬성론의 본질은 죽어도 싼 것들, 짐승만도 못한 것들은 이 사회에서 죽여 없애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고, 이것은 이미 이성의 문제가 아닌 종교의 문제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들의 출발점이 "인간은 존엄하다, 모든 인간은 생명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명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형에 찬성하는 이들의 출발점은 "죽어도 싼 인간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죽여 없애는 것이 옳다"이다. 나로 말하면, 죽어도 싼 인간들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므로, 기존의 찬성/반대 사이에 걸쳐있는 회색분자라고 해야하나?
우선, 인간의 존엄성(혹은 그 부정)에서 출발하는 기존의 사형제도 반대(찬성)는 하나의 종교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전에도 썼지만,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허상이고, 우리의 믿음,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전제일 뿐, 무슨 불변의 진리라거나 하는 건 아니다. 인간 말고는 아무도 인간 존엄하다고 해주는 존재가 없다. 인간만 인간이 존엄하다고 할 뿐. 개미가 개미들끼리 개미의 존엄성을 믿고 살아가는 것과 그들이 진짜로 존엄한지와는 다른 문제이다. 물론, "존엄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다"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존엄성의 주관성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모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존엄성이라는 것이 주관적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사람에 따라서는 존엄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사람에 따라서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고, 존엄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형시켜야 한다는 말에 무너지게 된다. 이 주장에서는 결국 한 단계 위의 정치적 타협을 할 수밖에 없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민주주의다. 결국 헌법/법률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느 쪽을 믿는 사람이 많은가에 따라서 사형제도의 존폐가 갈리는 것이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진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우리 종교가 더 좋은데, 너희는 왜 그 종교를 믿니?" 수준의 아쉬움밖에 안 남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오판에 관한 이야기는 마지막에만 덧붙이기로 한다. "사형제도에는 찬성하지만, 오판의 위험 때문에 반대한다."라는 말은 하나마나 하다. 그래서,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한다는 것인가, 반대한다는 것인가? 만약 우리 모두가 100% 확신할 수 있는 범인의 극악무도한 범죄가 드러났을 때,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것이다. 사형제도를 논할 때 기본입장은 오판의 가능성을 0으로 두고 시작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점 흐리기 밖에 안된다. 일단 기본적인 논의가 끝난 다음에 현실적인 고려로서 사형제도가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되는 경우랄지, 오판의 가능성이라든지, 비용의 문제 같은 것을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지, 처음 이야기 시작할 때부터 오판 얘기부터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주관적 요소와 확실치 않은, 그리고 악용될 소지가 있는 예방효과라는 요소, 그리고 정치적 악용 내지 오판의 가능성과 같은 위험요소를 빼면 사형제도 존폐 논쟁에 무엇이 남나?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내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에게 할 수 이야기, 그들의 종교를 바꾸도록 설득할 수 있는 말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1. 그 죽어마땅한 인간들을 죽이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
무엇보다,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죽는 건 괜찮은데, 그들을 누군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처럼 찝찝한 게 없다. 아무리 치가 떨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을 저지른 인간이라 해도, 사형제도의 본질상
누/군/가/는/ 그/ 짐/승/만/도/ 못/한/ 존/재/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은 이것에 대해 두 가지를 반론은 제기하는 것 같다. 첫째는, 그런 존재들을 죽여 없애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 정의의 구현이라는 논거. 뭐, 나로서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논점은 그 존재들의 숨통을 끊는 행위가 현행법상 살인이냐 아니냐도 아니고, 그것이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지, 혹은 합헌법률인지가 아니다. 법률문제도, 헌법문제도, 결국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의지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은 정책의 문제, 결심의 문제인 것이다. 당신은 그 죽어도 싼 존재를 정말 다른 어떤 사람이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건가? 당신이 죽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면, 이미 사형제도 존치론의 근간은 흔들린다. 그 숨통 끊는 일을 꼭 본인이 할 필요 없다고 피해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 국가가 무슨 귀신도 아니고, 그 실체는 국가를 이루고 국가의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집합체인데, 그 숨통 끊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누가 되든지 상관없어야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하는 것이니까, 내가 직접 할 필요는 없다, 혹은 내가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해야 한다" 이렇게 나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누군가가 죽인다"에서 "그 누군가는 국가 기관이고, 공무원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이다"로 논점을 옮기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말이다. 당장 "그러면 왜 그런 일을 하는 공무원을 두어야 하는가?", "그 공무원의 직무라는 것이 국가가 해야할 일인가?", "그 공무원은 무엇에 근거해서 그 일을 행하는가?"라는 물음이 들 수밖에 없고, 여기에 "법률로 정했으니까" 수준의 답변은 위에서 말한대로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순환논리밖에 안 된다. 피끓게 만드는 흉악범을 보면서 분노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국가라는 탈을 쓰고 그 흉악범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도, 사형선고를 하는 판사도, 사형을 집행하는 법무부 공무원도, 국가 기관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럴 힘을 부여하고, 그들이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상, 우리도 그 제도의 수혜자이자 후원인인 셈이다. 개인의 분노와 그 분노를 집단 차원에서 해소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분노를 표출하는 것, 이미 이성이 아니고 감성이다.
둘째로, 이러한 지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대응이 곧, 법이 꼭 이성적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맞다. 법은 이성적일 수도 없고, 그래서는 뭐가 안 된다. 법이라는 것이 많은 경우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결국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고, 인간 존엄성이라는 종교의 반영이며, 민주주의라는 절차에서 나오는 이성과 감정의 결합체다. 그러나, 이 논의는 법이라는 제도의 속성과 사형제도의 일반적 적용범위를 보았을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인간은 개인적 차원에서 분노하지, 사회적 차원에서 분노하지 않는다. 사회적 차원에서 분노한다는 말을 쓴다면, 사회 성원 모두가 개인적으로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말일게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을 개인의 합 이상이라고 본다면, 그러한 분노를 꼭 사형제도로 치환시킬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법이라는 게 우리가 세상 살기 위해 만든 규칙인 것이고, 그 규칙을 정할 때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게 한 번 거르는 과정이 없다면, 법은 사적 형벌 집행을 공적 형벌 집행으로 돌러놓은 것 이상은 아닐게다. 굳이 따지자면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이, 특히 피해자의 가족들이, 혹은 피해자 본인이 원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 가장 그 분노를 적정선에서 표출하는 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사형 뿐만 아니라 다른 자유형에 대해서도 같은 논거를 들 수 있다. 사형이 가능하다면, 왜 굳이 징역형을 고집하는가? 분노의 수준에 맞게 그 짐승만도 못한 것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성기를 자르고, 몸을 으깨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만인의 본보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분노 표출 차원에서도, 예방 차원에서도 적절한 것이 아닌가? 왜 사형은 괜찮고,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것은 안 된단 말인가? 사형제도를 존치하는 이들은 이러한 형벌에도 찬성하는 것인가? 혹은 사형제도보다 이런 형벌들이 무언가 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는 이러한 형벌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형벌이라는 것, 현대 국가의 형사법 체계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통일된 척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 그 사이에서 죄의 경중과 인신 구속의 기간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계량화 내지는 객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현대 국가의 형벌 시스템이 이미 어느 정도 순수한 복수의 표출에서 떨어진 제도인데, 왜 굳이 사형에서만 복수의 순수한 표출을 고집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누가 생각해도 죽어마땅한 인간들에게는 단순 절도나 은행 강도, 사기 같은 범죄에서 느껴지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끓어오르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리 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된 데는 우리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분노가 좀 누그러질까?
2. 그 죽어 마땅한 누군가를 만드는 데 우리도 일조했다는 점.
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육을 통해 인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건 경험에 의해, 그리고 어느 정도는 종교로서 믿는 것이니, 이에 반대하시는 분은 차근차근 설명해서 나의 종교를 무너뜨려주기 바란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은 존엄하다는 밑도 끝도 없는 명제보다는 훨씬 귀납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전제로 삼는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쨌든, 인간이 교육을 통해서, 다른 인간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어느 정도 바뀌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틀을 짜나갈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우선, 태어날 때부터 살인자로 태어나는 이들은 제외하고 보자. 교육을 통해서, 순간순간 그에게 어떤 뉘앙스를 가지는 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영향을 통해서 우리가 그 짐승보다 못한 이들을 그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도록 이끄는 데 조그만 기여를 하고 있다면 무리인가? 그러한 인간들이라고 진공속에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그 인간들이 그렇게 되어버리기 전에는 분명 어딘가 그를 바른 길로 (혹은 좀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나는 어리석은가? 언젠가는, 적어도 태어날 때에는 순진무구했던 이들, 혹은 악독하더라도 교육을 통해 바르게 클 수 있었던 이들이 렇게 되어버린 데는 우리 스스로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까?
물론 나도, 당신도 그들을 직접 만난 적이 없을 것이다. 직접 만나기는 커녕, 뉴스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기 전까지 그들의 존재를, 그런 생명체가 이 세상에 같은 하늘을 지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법제도도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법의 구속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직접 만날 필요도 없고, 학교를 다니면서 그 학교의 교육이 사회적으로 인증을 받았는지 직접 검증할 필요도 없다. 승차권의 법적 효력을 따지기 위해 법전을 들여다볼 필요도, 지하철 공사의 자본금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법이라는 것은 본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희미한 연결고리로 연결된 채로 모여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누가 무얼 하는지 모르고 살아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깔려있는, 다같이 딛고 서 있는 바닥 같은 것이다. 그렇게 희미하게 널리 얽혀있는 사회에서, 내가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고 그가 그런 인간 말종이 되는 데 기여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를 잡아야할 임무를 띠고 있는 경찰을 그 자리에 임명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잡는 것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면, 너무 고지식하다고 할 것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남 일에 신경 쓰나? 누가 남이 자기 일에 신경 쓰는 걸 반기나?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부대끼는 것이 현대 사회다. 왜 굳이 인간 말종에 대해서만 복수니, 감정이니 운운하며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걸까? 그 말종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한 최소한을 갖추지 못한 것이 그 본인이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우리는 그의 행동에 아주 조금은 책임이 있다. 그를 인간으로 길러내지 못한 우리의 교육제도가 져야 할 책임이 있고, 그를 미리 막아내지 못한, 그러나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우리의 치안 체계가 져야 할 책임이 있고, 그의 친구, 직장 동료, 그리고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함께 져야 하는 책임이 있다. 아무리 이 책임의 양이 작을지언정, 그 책임의 무게를 무시하고, 모든 죄과를 그 개인에게 넘겨 그의 숨통을 끊어서 복수를 택하는 것,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마도 나는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영화 "American History X"를 너무 깊이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흉악하고 잔혹한 범죄자도 인간이라는 것, 그 인간이 하루 아침에 그런 인간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의 삶에 묻어있는 아픔과 굴절에 눈돌리고 한 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그의 숨통을 끊는 것으로 복수를 단행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 방해가 되는지, 얼마나 우리 시스템의 문제를 덮어 놓는 데, 인간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고쳐 나가는 데 모순되는 행동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이 존엄하다는 당연명제가 아닌, 인간이 부족하다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한다면, 분노와 그 분노의 폭발이 그 인간말종에게는 또 한 번의 소외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3. 사형제도보다 부담이 덜 한 방법으로 그들을 막을 수 있다면......
결론치고는 시시하지만, 그래도 사형제도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사형제도가 없는 나라들이 범죄율이 낮더라"고 말하면, "사형제도가 없어서 범죄율이 낮은 게 아니라, 일반적인 치안이 좋아서 범죄율이 낮은 것"이라고 반박(?)을 한단다. 만약 사형제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면, 그것이 문화든, 교육이든, 치안이든, 그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고, 사람이 모자란다면 사형처럼 화끈한 볼거리로 경각심을 높이는 것도 "경제적"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제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도 사형제도를 생중계하자는 말은 않는다. 이미 경제적인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돈도, 사람도, 여유도 많아졌다는 말이다. 몹쓸 인간들은 가두자. 그러나 그들을 복수라는 명목으로 쉽게 죽여없애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사람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모르는 사람이 봉변을 당하면 돕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자. 돈을 들여 경찰을 늘이고, 꼼꼼히 우리 주변의 약자들을 돌보자. 그렇게 사형제도 없이 치안이 좋아지는 거, 그게 사형제도보다 "선진적"인 거 아닌가? 선진적이고 싶다면, 선진국처럼 돈도 많이 쓰고, 마음에 여유도 갖고, 그렇게 살 준비를 하자.
블루룸,
또다시 몇 주 미루다 결국 날림으로 마무리...
앗, 오판 등등 안 썼군. 그러나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패스.
-_-;;
덧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에게 수많은 소설과 영화 중에서 공지영의 소설과 영화 "American History X"를 권합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한지,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두 명제가 얼마나 "죽어도 싼" 인간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어쩌다 이 인간들은 그 꼬라지가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숨을 쉬다 보면, 문득, 사형제도보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들에 압도되어, 처음 그들에게 일던 분노는 아주 작은 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인간의 분노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답지 못한 존재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에 대한 분노가 온당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라 느껴서 이 글을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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