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제도 뜯어보기 (3) - 고시 v. 로스쿨

로스쿨 논의 중에 가장 복잡한 것이 사회적 에너지의 적절한 분산과 관련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낭비되는 에너지가 너무나 많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로스쿨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시장 진입이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매우 설득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이 부분의 글을 쓰기 시작하는 지금으로서도 나의 대답은 정해지지 않았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인 만큼 찬찬히, 구석구석 살펴본다는 원칙 밖에는.

우선 전제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법시험 제도를 통해서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반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신림동 고시촌을 비롯해서 수만 명의 20-30대 젊은이들이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씩 객관식 내지는 목차를 외워서 쓰는 논술형 시험을 대비한다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사회적으로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 현실을 로스쿨이라는 제도를 통해 바꾸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어떻게,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그리고 그에 따르는 다른 문제는 어떤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리라.

우선, 개인의 에너지 낭비를 사회가 어느 정도 나서서 통제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있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개인이 자신의 시간과, 열정과, 돈을 낭비하고 싶다는데 국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다. 자기가 번 돈을 종로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으면 그렇게 할 일이고, 명상으로 평생을 살고 싶다면 그것도 개인의 선택으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가 될 때이다. 예를 들면, 왜 교통법규로 헬멧 착용을 의무화 하고 그 법규를 어기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리는 것일까? 사실 오토바이 헬멧을 쓰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한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미관상 심히 불쾌한 것도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 굳이 따지고 들자면, 자신의 생명 내지는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것 이상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내가 내 목숨 사소하게 여긴다는데,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안전을 희생한다는데, 국가가 나서서 그 가치판단에 왈가왈부 하는 것이 별로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이용하고, 그에 따라서 사고도 늘어나면, 이 문제에 대처하는 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커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죽거나 다치면 그만큼 보험, 의료, 복지 (특히 죽거나 다친 이의 가족이 사회 안전망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경우) 비용이 늘어난다. 국가가 아닌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쪽을 고집하여 소송을 통해서 잘잘못을 가려서 사고를 낸 당사자들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효과적으로 보상을 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이에 비하면 헬멧을 강제하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비교적 확실한 효과를 즉각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가 나서서 할만 한 사업인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건강과 돈과 시간을 어떻게 낭비하는지는 전적으로 그에게 맡겨야 할 일이지만, 그 개인의 수가 많아지고, 단순히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 경제가 흔들리게 되면 이미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의 문제가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법률가 양성이라는 것이 개인의 서비스업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의 정책과 입법이 결정되는 하나의 채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법률가 양성과 법률 시장 규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더 정당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들을 하지만, 법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개개인을 넘어선 사회와 국가의 영역이고, 그 역할을 어떻게 배분하여 수행할지도 국가의 관할이다. 사회적 에너지가 심히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공공의 영역과 관련이 깊고, 사회와 국가의 이익이 걸려있는 일이라면 개인의 자유와 기회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문제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로스쿨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가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것인가이다. 우선, 숫자만으로 보아서는 상당한 효과를 볼 것 같다. 현재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인구가 3만명 내외라고 하는데, 로스쿨 전체 정원을 2000명 내외로 하고 최종적으로 법률가 자격을 1000명 안팎으로 제한하여 부여한다면, 경쟁은 30:1 에서 2:1로 줄어들고, 그만큼 결과물 없이 투자되는 에너지도 적어진다. 그러나 이것으로 계산이 끝나지는 않는다. 

첫째, 그 첫 관문인 2000명 커트라인에 들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 질 수도 있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와 고시제도의 운용에 비추어보았을 때, 대학 학부과정이 로스쿨 진학을 위한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학부생들은 물론이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로스쿨 진학을 위해 또 몇 년을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는 과연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사법연수원을 치환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투자하는 이들의 초기 투자 자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로스쿨 제도가 매력적인 해법이다. 현재 사법고시제도 하에서는 모두가 "개인적으로" 완전경쟁시장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국가는 개개인들의 법지식을 평가하여 예비법조인을 선발한다. 대학의 법학과들이 이런 예비법조인의 양성에 별 역할을 못한다는 점은 앞서 지적한 바 있고, 더 나아가서 개개인들이 법공부를 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와 사회 전체 단위를 계산해본다면 더 쉽게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제도 아래서는 수험서, 학원비, 숙식, 기회비용 등 사법시험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로스쿨 제도에 비해서 개인적으로는 낮을지 몰라도,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의 숫자가 몇 만을 헤아리고, 고시촌의 경제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이다. 

반면에 개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단가가 높더라도 일단 소수 인원을 선발한 다음 교육과정을 거쳐서 법조인을 선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훨씬 싸게 먹힌다는 말이다. 로스쿨 입학생을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선발할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의 예를 따라 법학지식을 전혀 묻지 않고 (로스쿨 제도와 법학지식을 묻는 선발시험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논리, 언어 능력 등만을 측정하는 적성시험, 학부 성적, 자기 소개서, 추천서 등만을 기준으로 선발한다고 가정하면, 대학에 등록한 채로 고시공부를 소홀히 하느라 흘려보내는 기회비용의 회수에서부터 두텁고 무거운 법학서적을 구입하는 비용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비용이 절감된다. 물론 선발시험에 대비하는 학원 등등은 있겠지만, 여러 과목에 걸친 전문 지식의 주입에 기반한 현재의 고시산업에 비할 바가 아니다. 벌써부터 고시학원과 고시원 등 고시산업의 주종을 이루는 이들이 업종전환을 모색한다니 이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둘째, 부수적으로 따르는 대학 교육 자체의 정상화도 기회비용의 절감이라는 측면을 살펴보면 결코 작은 성과는 아니다. 물론 대학들도 지금처럼 로스쿨 합격자를 몇 명이나 배출하는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로스쿨 준비자들을 위한 특별 강좌를 마련하거나, 성적 관리용 과목들을 개설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선발 과정의 성격 자체가 바뀌는 것을 염두에 두면 염려할 수준은 아닐 것 같다. 그보다는 좀더 진지하게 해당 학과 공부를 하는 학생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 수업의 질이 높아진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으로, 그러한 효과가 대학이나 학문 자체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되 결국은 로스쿨이나 의대로 진학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그 학문 자체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매우 타당한 지적이긴 하지만, 넓은 맥락에서 봤을 때는 그닥 설득력이 없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대학 다니고 졸업한 이들 중에서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일에 열정을 가지고 종사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의과대학, 법과대학이나 공학대학 등은 그나마 높겠지만, 다른 자연과학, 인문학을 볼 때, 그리고 소위 말하는 "비인기" 학과의 현실을 보았을 때, 취업학원이라는 말은 쓰면서 로스쿨 준비단계라는 말은 왜 거부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차라리 로스쿨을 노리고 학점관리를 위해 하향지원하는 재원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가운데 그 학교, 그 학문에 매력을 느껴 그곳에 자리잡기를 노리는 것이 솔직하고도 의미있는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한다. 

셋째, 그렇게 사법고시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낭비를 막는다고 그 에너지가 다른 곳에 효율적으로 투자될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높은 실업률과 안정되지 못한 한국의 노동 시장의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고시의 길이 좁아지기 때문에 에너지가 효율적으로 재분배될 것이라는 낙관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 글에서 다루기에는 너무나 큰 주제이므로, 앞서 다른 글에서 다룬 정도로 마무리하도록 한다. 요지는, 법률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조절됨에 따라서 법률 시장 특유의 매력이 줄어들 것이고, 사회적으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훨씬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진입 장벽과 경제적 능력의 상관관계이다.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 법률가 양성에 요구되는 개개인의 부담은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듯하다. 실제로 20-30:1 정도 되는 현재 학생:교수 비율을 10-15:1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더욱 전문화된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실무능력을 갖춘 교수진을 영입하려면 적어도 현재 법과대학 등록금을 그야말로 대폭 인상하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얼추 계산해보아도 1년치 등록금만 최소 천만원을 넘나드는데, 경제적 능력이 진입장벽이 된다는 것이 허튼 소리가 아니다. 

과연 이런 식으로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은 정당한가하는 것이 로스쿨 제도 도입 논쟁의 가장 중심인 것 같다. 도입을 반대하는 쪽은 전적으로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완전경쟁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강조하고,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그 완전경쟁에서 열매없이 낭비되는 에너지에 주목한다. 나는 이 논의 자체에 앞서 과연 로스쿨 제도의 도입이 경제적 진입장벽과 필연적인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를 일단 피하고 싶다. 앞서 지적했듯이, 개인들에게 부과되는 비용은 법률시장 자체에서 높은 수임료를 통해 어느 정도 보상해 줄 것이다. 또한 뒤에 논의할 장학제도나 학자금 대출 제도는 개인의 직접적인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줄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수험서, 학원비용, 기타 기회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낮은 합격률을 생각해볼 때, 3년이라는 정해진 기간 동안, 50-60%의 합격률을 향해서 투자하는 돈이 그렇게 높은 장벽인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회적으로 절약되는 에너지를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진입장벽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아주 똑똑하지만 동시에 아주 가난한 학생을 생각해보면 로스쿨 제도가 얼마나 경제적 능력에 무게를 두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현재 사법시험 제도 아래서 도서관에서 헌책으로 공부하여 고등학교 졸업 1년 반만에 1차, 2차를 통과하고, 2년 동안 월급을 받으면서 연수원을 수료할 수 있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 그녀가 로스쿨에 합격할 가능성은 100%이지만,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은 100%이고, 대학을 다녀야만 하는 제도의 특성상 걸리는 시간과 기타 부대 비용 역시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은 없거나 극소수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법, 법률, 그리고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개개인의 차원에서 그녀의 권리와 의무를 생각해보는 것도 그 제도의 맹점을 미리 내다보고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그런 반론은 무시하기로 한다.) 그녀의 경우는 위에서 말한 3년투자, 50% 합격률 공식이 전혀 해당되지 않고, 설득력도 없다. 당장 대학을 다니는 것도 버거운 이에게 7년 후의 높은 수임료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 가능성 자체만으로 로스쿨 제도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고 법조인으로 길러낼 수 있는 보조제도만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면, 로스쿨 제도가 갖는 다른 장점들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어 보겠다.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 분명히 법조인이 되는 길목의 진입 장벽은 높아진다. 분명히 경제적 사정 때문에 고시공부라면 도전해 보았을 사람들이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는 일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을 어느 정도 수용해 낼 수 있는 제도로 로스쿨 제도를 세울 수만 있다면 그 제도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낭비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한 최소한도까지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로스쿨 제도의 매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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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room | 2008/03/01 03:19 | Trapez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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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a at 2008/02/29 13:44
개..개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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