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제도 뜯어보기 (2) 법학교육과 고시


미국의 법학교육은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예외적으로 대학원이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한편으로는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법률가 양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장단점에 관한 말도 많고 탈도 많다로스쿨 제도 도입에 대해 그 논쟁이 프레시안 등에서도 활발한 가운데,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이 글에서는 법학 교육과 고시 공부에 대한 논점들을 정리해 본다.

법학교육과 고시공부의 괴리는 대입선발기준에 따른 고등학교 교육의 변태화와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학원의 인기강사를 좇아 고시공부를 하느라 휴학을 하고, 대학에서는 그런 학생들을 붙잡고, 그 학교 출신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객관식 시험, 답을 외워서 쓰는 "논술"형 시험을 시행한다. 시험이야말로 공부를 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는 공부가 판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법률을 개혁할 힘을 기르기보다는 학설을 외우고 절충설로 결론을 맺게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물론 법학의 특성상 판례의 표현, 법률의 문장 하나하나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법학교육은 스스로 간단한 회로를 그려내기는 커녕 납땜하느라 자신이 어떤 부분을 맡고 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조립공을 만드는 "공학"에 다름아니다.

예전에 공대 출신 어떤 분이 법대에 재입학하여 다니면서 법학이 쉽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적이 있다. 공대는 기본적으로 수학이 되고, 알고 있는 여러가지 개념이 있어야 그것에 바탕을 두고 문제 하나를 풀더라도 푸는데, 법대공부는 잘 쓴 논문 몇 개만 찾아서 찬찬히 읽어보면 그 주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비교에 기초한 판단은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법이 그렇게 쉬운 이유는 그게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만 제대로 설명하면, 어느 시골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셔다가 얘기를 들어봐도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누가 잘못했네, 누가 얼마나 물어내야하네... 문제는 제도 자체를 꿰뚫어보고, 사람 사는 모양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은 그렇게 한 주제, 한 주제 스스로 풀고 이해하는 것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왜 우리가 법조인 윤리에 민감한지 생각해보는 것도 같은 문제에 대한 다른 접근일 수 있다. 왜 사법연수원에서 굳이 윤리 시험을 보는가? 왜 대법관 청문회 질문지에 형식적인 답을 베껴내면 기겁하는가? 황우석 사태로 과학자의 윤리도 부각되고 있지만, 그보다 오래전부터,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법률가 윤리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과학자의 그것보다는 훨씬 무게를 두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그분이 얘기한 과학을 하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하고, 법학은 훨씬 직관적이고 가치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과학자에 비해 법조인이 현실사회에서 개개인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학에서 법학 교육을 안 받아도 비리 더 저지른다는 얘기 못들어봤다는 식의 얘기로 법학교육과 고시공부의 괴리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논점 비껴가기다. 진정 문제는 지금의 제도로 그러한, 법기술 이상의 교육을 할 수는 없는지, 과연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 그 현실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지인데, 객관식 문제 하나하나 정답 시비로 소송이 걸리고, 덩달아 문제는 객관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법률과 판례에 기대가는 현재의 제도 안에서 이런 괴리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는 점에서 로스쿨이 무언가 전환점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에는 두 가지 반론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첫째는 로스쿨 제도를 시행한다고 해서 지금 법대 교수진이, 혹은 앞으로 임용될 교수들이 현재의 수업방식을 탈피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시험 자체도 로스쿨 도입과 함께 바뀐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현재의 객관식 문제풀이와 목차와 키워드를 외워서 쓰는 논술형 시험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고, 고시에 대한 압력이 줄어드는 만큼 교과과정의 다각화와 수업 내용의 심화가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로스쿨 교육 자체가 현재의 법대 교육과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더라도 로스쿨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사법시험에 대한 수험생과 학교측의 압박을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를 통해서 여유있는 교육과 투자를 일궈낼 수 있다면 법학 교육과 고시 공부의 괴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미국의 경우를 보면, 많은 주의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70-80% 정도이고, 전문화된 사설 학원들이 고시공부의 대부분을 맡고 있어 대부분의 학생들이 로스쿨 3학년 마지막 학기와 그 뒤의 2-3개월 방학 동안 고시공부를 한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비교적 큰 부담없이 다양한 과목들을 수강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쓰고 싶은 주제에 관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 논문을 쓴다. 다시 말해, 사법시험 제도만의 개혁으로도, 로스쿨 도입 만으로도 고시공부와 법학 교육의 괴리를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두 카드를 함께 쓰면 훨씬 쉽게 그 괴리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둘째의 반론은 학생들이 받는 경제적 압박감과, 그에서 비롯된 로스쿨에의 압력으로 실무 중심의 교과과정만 각광 받고, 로스쿨이 실무를 중심으로 하는 교수진을 선호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기초법학이 고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고, 필자도 우려하는 바이나, 로스쿨 도입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의 경우, 초기 미국의 법학교육은 철학과 문학은 물론 수학, 음악, 라틴어, 프랑스어 등등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교육이었다. 변호사 한 명 한 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힘을 기르기 위해서, 그리하여 사회에 나가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런 커리큘럼을 짰던 거라고 한다그 후로 법의 영역을 포함하여 인문학, 공학 등 모든 학문의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법대 4년 과정으로 이를 소화할 수 없게 되자, 전문대학원 형태로 교육제도가 바뀌었다. 더 나아가 법학 내부에서 전문화와 파편화를 피할 수 없게 된 지금도 여전히 많은 법대 교수들은 철학, 사회학, 심리학, 문학을 함께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과 토론한다. 제도 운영의 묘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히 적겠지만, 가장 자본주의에 친하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에서도 법철학, 법사회학, 인권법 등 소위 "돈 안되는" 법학에 있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또한 학부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공학, 자연과학 등등 다양한 공부를 한 학생들을 모아 법학 교육을 하는 것이 오히려 기초법학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음 글에 대해서는 사회 에너지의 효율적인 투자에 대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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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room | 2008/02/23 09:56 | Trapez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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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좌파논객 at 2008/02/23 10:28
그 공대생 좀 거시기하네요...
잘쓴 논문 몇개만 찾아서 본다...
법전 제대로 공부하시면 수도 없이 밀려드는 개념들에
좌절하실 건데...
전공 특성상 수학과 법학 둘다 공부해본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전반적으로 수학에서의 개념이 좀더 어려운 편이지만
양적으로 치면 익혀야 할 새로운 개념은 법학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고 법학에서의 개념이 쉬운 편도 아니고 말이죠
저 공대생이 아직 법학 공부에 제대로 착수하지 않을
확률이 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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