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주제이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서 뭉텅뭉텅 자르기로 했다.
우선은 옛날/지금/앞으로 세 가닥을 잡고 올려보기로 한다.
[주: 아래 "우리" 또는 "우리네"는 20대 후반 내지 30대 후반을 염두에 두었음. 요즘 아이들에 대해서는 공교육 (2) 에서...]
몇 년 전에 학원에서 강사라는 것을 했더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는 학교를 왜 다니니? 대학 가는 것만 생각하면 정말 비효율적이지 않니? 국영수 공부야 학원이 더 잘 가르친다며? 고등학교 안 나오면 대학을 못 가는 것도 아니잖아? 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거야? 친구? 너희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뭐 하는데? 같이 놀 시간이 있어, 같이 진지한 이야기를 해, 아니면 클럽활동 같은 거라도 하면서 사귀길 해? 아, 막말로 친구는 학원만 다녀도 만날 수 있고, 다들 같이 학원에 다닌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놀 시간도 더 생기고, 대학도 빨리 갈텐데, 도대체 왜 학교를 다니는 거야? 학연이야, 한 때 대성학원, 종로학원 하던 것처럼 학원도 하나의 학연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아까는 학연이 안 좋은 거라며?"
갑자기 물어본 것이기도 하고, 질문 안에 너무 복잡한 말들이 담겨있긴 했지만, 어쨌든 아이들 중 제대로 대답을 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논술과 면접을 배우러 온, 사형제도와 체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끝도 없는 아이들이, 자신이 왜 학교에 다니는 지에 대해서는 고3 끄트머리가 되도록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또 어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 따위의 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 알테고, 그럼 우리는 학교에 왜 다니는가? 나 스스로도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깨닫지 못하던 것,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뼈저리게 느낀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우리가 바른생활, 도덕, 혹은 윤리 시간에 배우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학교에 등교하면서 동생들이 차조심하도록 도와주라는 것,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는 것, 길을 건널 때는 좌우를 보고 건너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조회 시간에 군인처럼 줄을 서고 행진하는 것,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고 싶어도 교장 선생님이 연설하는 동안은 조용히 하는 것,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체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 한 사람이 잘못하면 단체로 기합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배워온 삶이다. 자신의 머리를 기를 자유가 꺾였을 때 반항하면 폭력으로 응징 당한다는 것, 구역질 나는 비리에 얽힌 교사들과 거기서 소외된 자기 마음에 드는 스승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제재라는 현실 앞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정도가 되면, 학생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 자신의 목소리가 없다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미 소위 문제아나 반항아들을 현실을 모르는 멍청이들이라 부르게 되고, 자신의 소신과 상관없이 점수에 맞는 대학을 가야하는 현실을 "가족과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꿈 따위는 없어진지 오래다. 설사 간직하고 있더라도 현실 앞에서 꿈을 구기는 것쯤이야 그리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네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배워왔다. 강한 자가 있으면 친하게 지내라고 배웠다. 정의라는 것도 작은 체제 안에서만 허용되었다. 네 동료의 잘못을 상사에게 고자질 하는 것은 정의롭지만, 상사의 잘잘못을 따지고 구조를 개혁하려는 것은 조직에 대한 배반이라고 배웠다. 정의도 중요하지만 나의 이익은 더 중요하다고 배웠다. 전체를 위해서 개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배우면서도, 그 희생되는 개인이 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비리라는 것은 다들 저지르는 것이고,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 식구, 자기 친구 못 챙겨주는 사람은 무능하거나 못된 거라고, 나 하나 나서봐야 세상 바뀌는 것 하나 없으니 그냥 이렇게 조용히 사는 게 낫다고,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배웠다. 그렇게 우리는 비겁한 소시민으로 자랐다.
바로 이게 박정희의 위대한 유산이다. 그의 군바리 정신 덕에 온 나라가 병영화되었다. 상명하복이 그 자체로 절대 선이 되는 시대, 학생들이 교사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회사 비리를 바로잡으려 하면 해고 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고 힘을 모으면 깡패에게 두들겨 맞는다. 기업이 국가의 정책을 거스르면 파산하며, 언론이 국가를 비판하면 해체당하고, 국민이 자유를 요구하면 총을 맞아 죽는, 그런 시대를 이룬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학교에 왜 가는 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바로 부모님이, 선생님이, 정부가 시키는 일이고, 그 정도의 이유라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우리의 삶에 비추어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블루룸,
다음 편에 계속...
우선은 옛날/지금/앞으로 세 가닥을 잡고 올려보기로 한다.
[주: 아래 "우리" 또는 "우리네"는 20대 후반 내지 30대 후반을 염두에 두었음. 요즘 아이들에 대해서는 공교육 (2) 에서...]
몇 년 전에 학원에서 강사라는 것을 했더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는 학교를 왜 다니니? 대학 가는 것만 생각하면 정말 비효율적이지 않니? 국영수 공부야 학원이 더 잘 가르친다며? 고등학교 안 나오면 대학을 못 가는 것도 아니잖아? 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거야? 친구? 너희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뭐 하는데? 같이 놀 시간이 있어, 같이 진지한 이야기를 해, 아니면 클럽활동 같은 거라도 하면서 사귀길 해? 아, 막말로 친구는 학원만 다녀도 만날 수 있고, 다들 같이 학원에 다닌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놀 시간도 더 생기고, 대학도 빨리 갈텐데, 도대체 왜 학교를 다니는 거야? 학연이야, 한 때 대성학원, 종로학원 하던 것처럼 학원도 하나의 학연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아까는 학연이 안 좋은 거라며?"
갑자기 물어본 것이기도 하고, 질문 안에 너무 복잡한 말들이 담겨있긴 했지만, 어쨌든 아이들 중 제대로 대답을 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논술과 면접을 배우러 온, 사형제도와 체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끝도 없는 아이들이, 자신이 왜 학교에 다니는 지에 대해서는 고3 끄트머리가 되도록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또 어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 따위의 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 알테고, 그럼 우리는 학교에 왜 다니는가? 나 스스로도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깨닫지 못하던 것,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뼈저리게 느낀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우리가 바른생활, 도덕, 혹은 윤리 시간에 배우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학교에 등교하면서 동생들이 차조심하도록 도와주라는 것,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는 것, 길을 건널 때는 좌우를 보고 건너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조회 시간에 군인처럼 줄을 서고 행진하는 것,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고 싶어도 교장 선생님이 연설하는 동안은 조용히 하는 것,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체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 한 사람이 잘못하면 단체로 기합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배워온 삶이다. 자신의 머리를 기를 자유가 꺾였을 때 반항하면 폭력으로 응징 당한다는 것, 구역질 나는 비리에 얽힌 교사들과 거기서 소외된 자기 마음에 드는 스승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제재라는 현실 앞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정도가 되면, 학생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 자신의 목소리가 없다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미 소위 문제아나 반항아들을 현실을 모르는 멍청이들이라 부르게 되고, 자신의 소신과 상관없이 점수에 맞는 대학을 가야하는 현실을 "가족과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꿈 따위는 없어진지 오래다. 설사 간직하고 있더라도 현실 앞에서 꿈을 구기는 것쯤이야 그리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네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배워왔다. 강한 자가 있으면 친하게 지내라고 배웠다. 정의라는 것도 작은 체제 안에서만 허용되었다. 네 동료의 잘못을 상사에게 고자질 하는 것은 정의롭지만, 상사의 잘잘못을 따지고 구조를 개혁하려는 것은 조직에 대한 배반이라고 배웠다. 정의도 중요하지만 나의 이익은 더 중요하다고 배웠다. 전체를 위해서 개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배우면서도, 그 희생되는 개인이 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비리라는 것은 다들 저지르는 것이고,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 식구, 자기 친구 못 챙겨주는 사람은 무능하거나 못된 거라고, 나 하나 나서봐야 세상 바뀌는 것 하나 없으니 그냥 이렇게 조용히 사는 게 낫다고,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배웠다. 그렇게 우리는 비겁한 소시민으로 자랐다.
바로 이게 박정희의 위대한 유산이다. 그의 군바리 정신 덕에 온 나라가 병영화되었다. 상명하복이 그 자체로 절대 선이 되는 시대, 학생들이 교사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회사 비리를 바로잡으려 하면 해고 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고 힘을 모으면 깡패에게 두들겨 맞는다. 기업이 국가의 정책을 거스르면 파산하며, 언론이 국가를 비판하면 해체당하고, 국민이 자유를 요구하면 총을 맞아 죽는, 그런 시대를 이룬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학교에 왜 가는 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바로 부모님이, 선생님이, 정부가 시키는 일이고, 그 정도의 이유라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우리의 삶에 비추어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블루룸,
다음 편에 계속...




